[東日本 대지진]“여보…” 쓰나미에 배우자 잃고 통한의 ‘사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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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까지 재난방송 마이크 안놓은 당신…
미야기 현 소방대원 아내 “살신성인 남편 자랑스러워”

일본 미야기(宮城) 현 나토리(名取) 시에서 소방대원으로 근무하는 사쿠라이 아유미(櫻井步·47) 씨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11일 집에 있다 지진 경보를 듣자마자 소방서로 달려갔다.

동료 2명과 함께 소방차를 타고 거리로 나선 그는 확성기로 “높은 곳으로 피난하세요. 쓰나미가 옵니다”라며 목 터지게 외쳤다. 걸음이 느린 고령자들을 피난소에 실어 나르면서 피난 방송을 계속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은 알지 못했다. 바다에서 5km 이상 떨어진 마을까지 몰아닥친 쓰나미는 그가 타고 있던 소방차까지 덮쳤다.

사쿠라이 씨의 시신은 12일 부인 미유키(美裕紀·43) 씨가 발견했다. 미유키 씨는 가옥과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피해현장에서 뒤집혀진 소방차 안에 있던 남편의 시신을 찾아냈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마이크가 꼭 쥐어져 있었다.

남편과 함께 소방차에 타고 있던 소방대원 두 명의 시신까지 찾은 20일, 미유키 씨와 소방대원들은 뒤집힌 소방차가 있는 곳을 찾았다. 부서진 소방차의 범퍼에 조화를 바치고 향을 피운 뒤 합장한 채 머리를 숙였다. 눈물이 흘렀다.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도 떠올랐다. “나는 소방대원이니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뒷날을 부탁해.”

미유키 씨는 “나도 남편의 피난방송을 들으며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남편은 최후까지 마이크를 꼭 잡고 남을 위해 헌신하다가 생을 마감했다”며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난 세 소방대원 덕택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한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말했다.

쓰나미 당시 차를 타고 피난소로 향하던 한 소방대원은 “사쿠라이가 탄 소방차가 쓰나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봤다. ‘고오오∼’ 하는 쓰나미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순간 사쿠라이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소방대원 3명 모두 최후까지 용기를 갖고 임했다. 정말 원통하다”고 했다.

살아남은 마을사람들 중에는 “사쿠라이 씨의 피난권고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피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사쿠라이 씨는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다.

도쿄=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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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쓰나미)의 피해가 극심한 일본 이와테(巖手) 현 야마다(山田) 마을의 오리카사 아키오(織笠明夫·64) 씨는 요즘 매일같이 피해 현장을 돌며 흐느낀다.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아내와 어머니를 잃었다는 통한의 자책감 때문이다.

그는 대지진이 발생한 12일 집 안을 향해 “쓰나미가 덮쳐온다. 빨리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아내 리미코(理美子·61) 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님을 홀로 두고 나 혼자는 못 가요.” 기력이 다해 누워서만 지내는 시어머니 기미에 씨(97)는 혼자서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리카사 씨는 아내와 어머니가 쓰나미를 피해 2층으로 피신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동차를 타고 언덕으로 내달렸다. 쓰나미가 와도 2층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황급히 돌아온 집은 자신의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1층은 완전히 박살났고 2층의 목재들은 150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아내와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수조차 없었다. 쓰나미에 휩쓸려 거리에 내팽겨진 2층 장롱에서 아내의 목걸이와 반지만 겨우 찾았을 뿐이다. 피해지역에서 수습된 물품을 진열해 놓은 근처 관공서에는 아내와 함께 찍은 여행사진이 있었다.

1주일이 넘도록 폐허가 된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오리카사 씨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어머니를 찾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진 발생 9일 만인 20일 발견된 할머니와 손녀의 구조 소식은 그의 희망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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