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日本 대지진]“가슴은 아프지만 한국인과 약속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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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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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강 온 日제빵왕

15일 현대백화점 미아점 문화센터에서 제빵사 스기야마 히로하루 씨(흰색 조리복)와 수강생들이 ‘한일문화교류 일본 명강사 초청행사’ 첫 번째 강의에 앞서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15일 현대백화점 미아점 문화센터에서 제빵사 스기야마 히로하루 씨(흰색 조리복)와 수강생들이 ‘한일문화교류 일본 명강사 초청행사’ 첫 번째 강의에 앞서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현대백화점 미아점 문화센터에서는 강의 시작 전 모든 수강생이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묵념 시간을 가졌다. 일본 대지진 참사로 인해 많은 행사에서 이런 애도가 늘고 있지만 제빵 강좌 시간의 애도는 좀 이색적이다.

하지만 이 강좌의 강사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 강사가 본국이 공황상태에 빠진 가운데서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항공 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바로 백화점으로 온 스기야마 히로하루(杉山洋春·32) 씨는 수강생들과 인사하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스기야마 씨는 현대백화점이 창사 40주년을 기념해 개설한 ‘한일문화교류 일본 명강사 초청행사’의 첫 강의인 ‘일본 제빵왕 스기야마 히로하루의 인기 크림빵’의 주인공. 도쿄의 유명 제과점 ‘브랑제리 니콜라’의 주인이자 주방장이며 베이커리 컨설턴트, 제빵 크리에이터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일본 세이부백화점의 ‘이케부쿠로 문화센터’의 대표 강사로 이날 한국에서 강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큰 피해가 발생한 데 이어 원자력발전소까지 위험한 상태에 빠지자 현대백화점 백성혜 문화센터장은 급히 스기야마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무사했지만 도쿄의 피해는 컸다. 세이부백화점도 주말 동안 정상영업을 못하고 문화센터 강의도 모두 중단됐다.

백 센터장은 스기야마 씨에게 “국가적인 재난을 당해 워낙 황망한 상황인데 우리 강의는 연기해도 괜찮다”며 “한국 고객들에게는 잘 설명하겠다”고 강의를 미루자고 했다. 하지만 스기야마 씨는 “수강생과의 약속인데 내가 불편하다고 취소할 수는 없다”며 “비행기가 어려우면 배를 타고라도 서울에 가겠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고심 끝에 그의 뜻을 존중해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스기야마 씨는 이날 “일본인으로서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복잡하지만 현대백화점과 첫 교류를 약속한 강좌가 우선”이라며 “강좌를 신청한 사람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기다리는 수강생이 있으면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이부 백화점 본점에서 하네다 공항까지 보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전철이 많이 늦어져 택시와 전철을 갈아타고 오느라 하네다까지 2시간 넘게 걸렸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날 14명의 수강생은 스기야마 씨와 함께 2시간 동안 크림빵 만드는 실습을 했다. 수강생 김연주 씨는 “일본 빵을 배우고 싶어 수강신청을 했지만 지진소식을 듣고 당연히 강의가 취소될 줄 알았다”며 “크림빵 만드는 비법은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인의 책임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백화점 문화센터를 통한 한일 간 문화교류를 처음으로 추진했지만 워낙 큰 재난상황이라 일본 측에 강의를 미루자고 했는데 지진과 쓰나미의 재난상황에서도 강의 약속을 지킨 스기야마 선생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달 말에는 일본의 유명 플로리스트인 사사키 히사마쓰 씨가 방한해 ‘한일문화교류’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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