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소유는 애리조나 전통” 기퍼즈 발언, 자신에게 총알로 돌아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1일 15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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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자 총기 허용 미국서 논란

"총기의 자유로운 소유는 애리조나 주의 위대한 전통이다."

전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애리조나 주 총기난사 사건. 그런데 이 같은 말을 했던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번 사건의 피해자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이다. 미국에서도 가장 총기에 관대한 애리조나 주 의원답게 그는 줄곧 총기 소유를 지지해왔다.

실제로 기퍼즈 의원은 2008년 연방 대법원이 행정부의 총기규제법안 위헌 심리를 열었을 때도 가장 적극적으로 위헌 판결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존 롤 연방지방판사 역시 "연방정부가 총기 소유자 신원을 조사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한 바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모바일판은 10일 "물론 이런 전력이 있다고 해서 이번 사건이 자업자득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며 "하지만 용의자 재러드 리 러프너 같은 이가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정치적 현실은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2억 정이 넘는 총기류가 퍼져 있는 미국에서 총기규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미해결과제다. 1980년 이후 해마다 3만 명이 넘는 시민이 총에 맞아 숨지지만 찬반양론은 여전히 팽팽하다. 애리조나 주만 해도 21세만 넘으면 누구나 허가 없이 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러프너처럼 심신이 불안정한 인물이 자유롭게 총기를 가질 수 있었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러프너는 2007년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됐으며, 그가 다니던 피마커뮤니티칼리지는 정신적 문제를 이유로 1년간 정학을 시켰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연방정부를 비판하고 히틀러를 찬양해 몇 년 전부터 경찰의 주목도 받아왔다.

사실은 미국도 정신이상자의 총기 소유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참사 당시 범인 조승희의 정신 병력이 문제가 되자, 이후 미 행정부는 정신병으로 범죄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인물들을 '전미범죄기록체크시스템(NICS)'에 올리고 집중관리를 추진했다. 타임에 따르면 이로 인해 3년 동안 데이터베이스에 오른 추가 위험인물은 2배 이상 늘어 200여만 명에 이른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관리를 담당하는 주 정부의 소극성이다. 연방정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NICS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애리조나 주의 경우 데이터베이스에 오른 12만1700명이 거주하는데도 막상 주 정부는 겨우 4%도 안 되는 4465명만 관리대상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루이지애나와 네브래스카, 펜실베이니아 주는 단 한 명에게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모두 대표적인 총기 소유에 관대한 주들이다. 미 최대 총기휴대 반대단체인 '브래디 캠페인'의 폴 헴크 회장은 "이번 사건은 러프너 같은 이가 맘대로 총기를 가질 수 있게 허용한 애리조나 주 정부의 책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났다고 총기 허용론자들의 태도가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애리조나시민보호연맹의 창립자 찰스 헬러 씨는 "오히려 시민이 스스로 무장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타임은 "주 정부가 총기 소유를 허용하더라도 범죄자나 정신병자를 관리할 책임마저 져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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