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정적으로 부상한 전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씨(사진)에 대한 최종 유죄 판결에 미국과 유럽이 전례 없는 비판 행렬에 나서자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러시아 법원은 지난해 12월 30일 호도르콥스키 씨에 대해 횡령 등 추가 기소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징역 13년 6개월을 선고했다. 6년 정도가 될 것이라던 당초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형량이다.
이에 따라 2003년부터 탈세 등의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고 7년째 수감생활을 해온 호도르콥스키 씨와 측근 플라톤 레베데프 씨는 앞으로 6년을 더 복역하고 2017년에 풀려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이들이 6년 뒤 풀려날 수 있게 된 것은 기존 복역 기간을 새 형량에 포함시켰기 때문. 재판부는 선고에서 “사건의 실제적 상황을 고려할 때 형 집행을 위해 피고를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자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러시아 정부는 독립적인 사법체계 발전 없이는 현대화된 경제시스템을 육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세계무역기구(WTO)는 규칙과 법에 의해 지배되는 조직”이라며 이번 판결이 러시아의 WTO 가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임을 시사했다. WTO 가입은 러시아의 숙원 중 하나다.
유럽연합(EU)은 총리와 외교장관들이 전면에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완전한 법치를 향한 진로를 철저히 지키겠다고 천명해온 러시아의 태도에 반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성명에서 “러시아가 공정성의 원칙을 존중하고 차별 없는 방향으로 법률을 적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서방이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러시아 경고를 무릅쓰고 이처럼 강력히 대응하고 나선 실제 목적은 이번 판결의 배후로 지목되는 푸틴 총리와 지지 세력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라는 게 유럽 언론의 해석이다. 2012년 대선 도전에 나서려는 푸틴 총리의 대외적 입지를 축소함으로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 WTO 가입 문제까지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사실은 러시아 정·재계를 향해 ‘알아서 판단하라’는 무언의 경고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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