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원들 69일만에 구조]산호세 축제의 현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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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쥐고 돌아온 광원 “지하감옥의 기념품”

“와∼ 만세!”

구조용 캡슐 ‘불사조’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광원 마리오 세풀베다 씨(39)의 환호가 갱도에서부터 들려왔다. 캡슐에서 나온 세풀베다 씨는 부인을 꼭 껴안은 뒤 현장에 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에게 “지하 감옥에서 바위 조각을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하며 돌멩이를 구조대원들 손에 일일이 쥐여줬다. 웃음꽃이 피었다. 13일(현지 시간) 오전 1시 반경 두 번째로 구조된 그는 불끈 쥔 두 손을 추켜올리며 펄쩍펄쩍 뛰었다. 건강해 보였다. 69일간 땅 밑에 있던 광원 33명이 가족의 품에 돌아오기 시작한 이날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은 축제 그 자체였다.

전날 오후 11시 15분 국영 구리회사 코델코 소속 구조대원 마누엘 곤살레스 씨가 성호를 그으면서 캡슐에 올라 622m 아래로 내려갔다. 곤살레스 씨가 탄 캡슐이 무사히 지하 피신처에 도착한 뒤 그와 광원들이 포옹을 하는 장면은 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지상에 전달됐다. 가족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고 약 1시간 뒤. 첫 번째 캡슐에 탄 플로렌시오 아발로스 씨가 올라오면서 축제는 시작됐다.

산호세 광산 하늘에 조명등 빛이 현란하게 엇갈렸다. 약 90m 뒤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구조장면을 지켜보던 가족과 칠레인 수백 명은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치∼ 치∼ 치∼, 레∼ 레∼ 레∼”라며 ‘칠레’를 연호했다. 조바심과 두려움은 안도와 환희로 바뀌었다. 그러나 구조된 광원의 가족들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광원의 구조에 혹시 부정이라도 탈까 봐 애써 기쁨을 억누르기도 했다.

33인의 구조 순서는 심신이 건강하며 캡슐을 타고 올라오는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 네댓 명이 먼저 나오고, 이후 열 명가량은 고혈압, 당뇨 같은 지병이 있거나 지하의 습기 때문에 호흡곤란, 피부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올라왔다. 건강할 뿐더러 긴(최소 36시간) 구조작업 동안 동료가 하나둘씩 주위에서 사라져도 견뎌낼 수 있는 낙천적인 사람들이 나머지 순서를 장식했다.

처음으로 구조된 아발로스 씨는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내외신 기자들이 그의 가족을 취재하려고 한꺼번에 몰리면서 텐트 몇 채가 무너지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아발로스 씨는 다른 광원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지상의 가족을 안심시킨 사진작가 역할을 했다. 33명 중 유일한 외국인이던 카를로스 마마니 씨(23)는 이날 네 번째로 구조됐다. 현장을 직접 찾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빈곤을 피해 칠레로 온 그에게 “일자리를 평생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최연소자는 산호세 광산에서 일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지미 산체스 씨(19)였다. 이날 다섯 번째로 구조된 그는 며칠 전 ‘여기에 있는 우리는 사실 33명이 아니라 34명이다. 신이 항상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올려 보냈다. 그는 이날 구조된 뒤 “가장 힘들 때는 나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며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태어난 2개월 된 딸이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었음을 밝혔다.

산호세=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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