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20년’ 경험에서 배운다]<3>아직도 끝나지 않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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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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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의 벽은 깼지만 ‘게으른 동독-거만한 서독’ 마음의 벽은…

이민자 갈등도 심각 틸로 자라친 전 독일 중앙은행 이사가 최근 펴낸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독일: 우리는 왜 조국을 위험에 빠뜨렸나’라는 저서에서 이슬람계를 비난하자 터키계 이민자들이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 내 800만 이민자 중 350만 명이 터키계다. 베를린=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이민자 갈등도 심각 틸로 자라친 전 독일 중앙은행 이사가 최근 펴낸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독일: 우리는 왜 조국을 위험에 빠뜨렸나’라는 저서에서 이슬람계를 비난하자 터키계 이민자들이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독일 내 800만 이민자 중 350만 명이 터키계다. 베를린=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통일된 지 올해로 20년. 하지만 동서독 주민 사이엔 무너진 ‘베를린 장벽’ 대신 새로운 ‘마음의 장벽(Mauer im Kopf)’이 세워지고 있다.” 17일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동독 출신 수잔나 팀 씨(30·여·회사원)는 “조국이 통일돼 매우 기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올해 축제분위기는 없고 착 가라앉은 느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통일 이후 동독의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된 게 사실이다. 동독 주민의 평균수명은 통일 전 서독 지역보다 3세 적었으나 지금은 79.3세로 같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큰 진보다. 하지만 난 아직 집이 없고…. 남편은 서독으로 돈 벌러 갔고….”

같은 동독 출신 앙케 레만 씨(40·여)는 동독 지역의 생활수준 향상이 통일 덕분임을 부인하진 않았지만 현 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실제 동독 지역 국내총생산(GDP)은 1991년 1706억 유로에서 2008년 3771억 유로로 17년 만에 2.2배로 늘었다. 동서독의 소득격차도 2.3배에서 1.4배로 줄었다.

하지만 12일부터 일주일간 독일 통일 20주년을 취재하면서 만난 많은 동독인은 만족하는 분야보다는 불만스러운 부분을 강조했다. 미래도 비관적인 예상이 더 많았다.

실제 이페 슈퇴벨리히터 교수(여) 등 라이프치히대와 드레스덴공대의 연구팀이 1987년부터 매년 조사하는 동독인의 의식변화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동독 주민은 소득 향상에도 불구하고 ‘구동독에 강한 향수’인 오스탈기(Ostalgie)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첫 조사 당시 14세로 현재 37세인 이들은 “사회안전망, 인간관계, 교육, 사회정의, 의료보험체계, 양성평등 측면에서 동독 시절이 현재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현재가 더 낫다”고 평가한 분야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기 계발에 대한 기회’ 등 두 항목뿐이었다. 이들은 또 동서독이 경제적, 내적으로 완전히 통합되는 시점을 1990년엔 각각 6년, 8년 뒤로 보았으나 지난해엔 15년, 20년 뒤로 예상해 시간이 흐를수록 비관론자가 돼 가고 있었다.

동독인은 독일의 정치·외교적 성공과 경제적 성장을 시인하면서도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무엇보다 좀처럼 줄지 않는 양 지역의 실업률 격차다. 한때 20% 가까이 치솟았던 동독지역 실업률은 지난해 11.8%까지 내려왔지만 동서독 격차는 6∼7% 선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서독으로 떠나면서 통독 당시 1800만 명을 웃돌던 동독 지역 인구는 최근 1650만 명대로 떨어졌다. 동독 주민은 여전히 매년 4만∼6만 명씩 줄어들고 있다.

동독 주민의 소득 역시 서독의 80%까지 올라왔지만 상당 부분이 독일 정부의 지원금이다. 독일 정부가 동독 지원에 사용한 2조 유로 중 40%는 퇴직연금이나 실업보험이다. 동독의 인프라 건설에 투입한 비용은 3000억 유로(15%)에 불과했다. 동독인은 스스로 벌기보다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동산과 주식, 예금 등 유동자산의 동서독 격차는 더욱 크다.

동서독 사이에 서로를 멸시하거나 불신하는 경향도 보인다. 최근 언론조사에 따르면 동서독 주민 모두 상대를 자국민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70∼80%에 불과했다. 서독 주민은 동독인을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동독 놈’이라는 뜻으로 ‘오시(Ossi)’라고 부르고, 동독인은 ‘거드름이나 피우며 잘난체하는 서독 놈’이란 뜻으로 ‘베시(Wessi)’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독 여성은 ‘돈 없는’ 동독 남성과 결혼하는 걸 기피한다. 동독 남성은 서독 여성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더 높다.

17일 베를린에서 만난 한 50대 택시운전사는 “수입은 적지, 물려줄 재산은 없지, 우리 아이들이 독일에서 영원히 ‘2등 국민’으로 살아갈까 봐 겁난다”고 후대를 더욱 걱정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해 9월 총선에서 독일 전체에서는 우파인 기민-기사연합이 전체적으론 33.8%의 지지를 얻어 좌파인 사민당(23%)을 눌렀지만 동독 지역에서는 사민당과 좌파당 등 좌파계열이 크게 선전했다. 14일 기자가 방문한 브란덴부르크 주는 지방의회 88석 가운데 사회당 31석, 좌파당 25석으로 좌파계열이 64%를 차지하고 있었다. 통일로 인한 동서독 갈등이 늘자 독일연방정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통일 비용을 아예 발표하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처럼 매년 GDP의 3∼4%를 쏟아 부어도 동서독의 격차 해소엔 무려 5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학자들 사이엔 끝내 격차가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독 오베르하펠 카운티의 부책임자로 20년간 재직하다 올해 5월 퇴임한 미하엘 나이 씨(59)는 “동서독의 완전한 융합에는 앞으로도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며 “하지만 통일이 동독 주민에게 선사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상대적 격차’에 대한 불만을 충분히 뛰어넘고도 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처벌보다 화해”… 동독 슈타지 비밀문서 공개제한 ▼
250만명 감시기록 보관… ‘피해자’ 확인돼야 열람

독일 베를린 슈타지 문서관리청에 보관된 문서들.
독일 베를린 슈타지 문서관리청에 보관된 문서들.
“처벌보다 화해와 통합에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17일 기자가 방문한 독일 연방 슈타지(동독의 국가공안국) 문서관리청의 요아힘 푀르스터 청장은 “문서 공개는 피해자가 요구할 때와 공익성이 인정될 때만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슈타지는 동독의 비밀첩보기관으로 나치보다 더 지독한 1800만 동독 주민의 감시망이었다. 푀르스터 청장에 따르면 슈타지엔 공식 직원 9만5000명과 ‘민간인 끄나풀’ 18만9000명이 있었다. 슈타지 문서는 약 30만 명에 이르는 정보원이 동독 시절 내내 수집한 국민 감시기록인 셈이다.

통일 당시 동독 주민이 가장 먼저 탈취하고 보존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 문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촉발한 동독 라이프치히 시의 ‘월요 평화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름트라우트 홀리처 여사(67·여)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라이프치히의 슈타지 건물을 보여주며 “당시 시위대가 감시문서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점령했던 건물이 바로 이곳”이라고 설명했다.

슈타지 문서관리청이 보관 중인 기록물은 인쇄 문서만 옆으로 늘어놓으면 114km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사진 140만 장, 녹음파일 3만1000개, 필름과 비디오 2705개도 함께 보관돼 있다. 전체 250만 명에 대한 감시기록물로 보관 선반만 1만5500개다.

슈타지 문서 공개를 둘러싸고 통일 직후엔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전면적인 공개는 되레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갈등만 일으키고 사회 통합에 역행한다는 판단 아래 ‘제한 공개’로 최종 결정됐다.

문서 공개 때 가장 큰 문제는 요청하는 문서가 존재하는지를 찾는 일과 문서 공개 요청자가 과연 ‘피해자’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 이 사건의 가해자가 다른 사건에서는 피해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문서 공개 요청부터 실제 공개까지 무려 2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푀르스터 청장은 덧붙였다.

통일 독일 정부는 또 사회 통합을 위해 통일 직전 서독에만 슈타지 정보원이 4만5000명 있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통일 이후 적발된 간첩행위 3000여 건 중 82명만 기소하고 실제 처벌은 23명만 했다.
베를린·브란덴부르크·라이프치히=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도움말=손선홍 주독일대사관 공사)
▼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통일 부작용 집착말고 긍정적 성과 고려해야… 탈북자 포용이 첫걸음

독일 통일 20년의 경험은 향후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 갈등은 장기적으로 치유될 수 있고 또 적극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 사례가 주는 교훈이다.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 통합을 앞당기기 위해서 남한 사람들은 지금부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전 통일교육원장)는 23일 “남한 사람들은 통일이 가져올 갈등과 부작용만을 걱정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인 성과를 바라보고 능동적으로 갈등 해소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한 출신 가운데 통일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역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독일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통일 15년 뒤인 2005년 동독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로 당선돼 2009년 재선을 거쳐 현재까지 독일을 이끌고 있는 점은 상징적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보다 못사는 북한 주민들과 통일과 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공유와 나눔의 철학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며 “함께 살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수록 통일 이후 나타날 남북 간, 계층 간 차별과 차이를 신속히 줄이고 갈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이면 2만 명을 넘게 되는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윤미량 통일부 하나원장은 “북한 주민들은 분단 65년 동안 남한과 다른 체제에서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사고와 언어부터 우리와 다른 점이 많다”며 “남한 사람들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탈북자 출신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현재 남한 주민들이 아시아 등 주변 여러 나라 주민을 받아들여 포용하면서 다문화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점은 향후 남북 통합과 갈등 극복에 매우 유리한 점”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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