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져 가는 ‘新일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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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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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이어 간 내각도 리더십 흔들… ‘민주당 플랜’ 공수표 전락 위기

민주당 정권이 지난해 9월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야심에 찬 구상들이 하나하나 멀어져가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이 지난 8개월 동안 우왕좌왕하면서 정권의 첫 구상이 일부 무너진 데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은 출범하자마자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함으로써 ‘꿈’을 펼치기도 전에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 동아시아공동체 가물가물

하토야마 전 총리의 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었다. 그는 총리 취임 후 가는 곳마다 아시아 국가로서의 일본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역량과 상호의존관계 심화 및 확대를 주창했다. 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대등한 미일관계’ 구상이었다. 자민당 정권에선 일본이 수십 년 동안 미국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불평등 관계였지만 민주당 정권은 동등한 위치에서 대미외교를 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대미외교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겠다는 방침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동아시아공동체’와 ‘대등한 미일관계’ 구상은 정권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후텐마(普天間)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겪으면서 가뜩이나 미국의 의심을 샀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 점점 꼬리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간 총리 취임 후에는 화제에 오르는 일조차 거의 없어졌다. 대등한 미일관계 구상 역시 후텐마를 둘러싼 미국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역부족임이 여실히 드러난 데 이어 간 총리가 강력한 미일관계 복원을 중시하면서 흔적을 감췄다.

이와 함께 하토야마와 간 총리가 공통적으로 내세운 슬로건이었던 ‘정치 주도와 관료 배제’ 역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하토야마 내각에서는 정치적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고, 8개월 동안 부총리로서 정권 운영 과정을 지켜본 간 총리는 취임 직후 관료 배제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간 총리는 민주당 내에서 관료 배제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소문났던 사람이다.

이러다 보니 민주당 정권이 정치 주도의 상징적 기구로 설치하려 했던 국가전략국은 기구 설치를 위한 법률조차 제출하지 못한 채 그보다 격이 낮고 법률적 근거가 약한 국가전략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전략국을 예산편성 작업을 주도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민주당 정권의 상징적 조직으로 키우려던 당초 계획이 물 건너간 것이다.

○ 총리실 강화 유명무실

총리실 강화 및 정부로의 정책 일원화 방침도 마찬가지다. 하토야마 내각은 총리실 기능을 대폭 강화해 국정사령탑 역할을 충실히 하고, 당과 내각으로 분산됐던 정책수립 기능을 정부로 일원화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을 장악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당시 간사장이 사사건건 정부 정책에 관여하면서 공염불이 됐다.

간 총리는 당 정책조정회장 자리를 부활시켜 각료를 겸직하게 함으로써 당과 내각의 정책조율을 강화했다. 정부로의 정책 일원화 방침을 포기한 것이다. 총리실 강화 방침은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참의원 선거 참패로 총리의 국정 장악력이 현저히 약해지면서 실현 불가능한 상황을 맞았다. 간 총리 취임 초기에는 당 간사장실을 총리 관저에도 설치해 총리실이 당정을 모두 장악하고 국정 전반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 했지만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참의원 선거 이후 야당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국정 운영의 무게중심이 총리실과 내각에서 당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정권이 중·참의원을 모두 장악했을 때에는 내각의 공식 결정이 가장 중요했지만, 참의원을 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는 주요 정책결정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야당을 상대해야 하는 민주당의 입김이 세졌고 내각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정치권에서 당고관저(黨高官低·당은 높고 총리관저는 낮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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