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대만 하나의 시장 ‘차이완 시대’]<下>‘중국 속의 대만섬’ 진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30일 03시 00분


군사요새서 관광지로… 양안교류 ‘빛과 그늘’ 축소판

2001년부터 中 샤먼시와 통행…작년 관광객 129만여명 왕래
오성홍기-청천백일기 나란히…中 포탄피로 만든 ‘포탄칼’ 인기
‘삼민주의 중국통일’ 선전판 여전…양안통일까진 험난한 길 예고

진먼 현 정부 소재지 중심가에 위치한 식당 ‘롄훙루’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대만 청천백일기가 나란히 걸려 있어 대만과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한 종업원이 “양안은 하나라는 사장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진먼=구자룡 특파원
진먼 현 정부 소재지 중심가에 위치한 식당 ‘롄훙루’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대만 청천백일기가 나란히 걸려 있어 대만과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한 종업원이 “양안은 하나라는 사장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진먼=구자룡 특파원
중국 대륙 푸젠(福建) 성 샤먼(廈門) 시 코앞에 위치한 대만의 진먼(金門) 섬. 면적 132km²에 인구 6만8000명의 자그마한 이 섬은 대륙과 마주한 대만의 최전방이다. 중국과 대만이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정식으로 서명하기 하루 전인 28일 이곳에는 교류 확대에 따른 희망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고민이 혼재돼 있었다.

○ 중국이 진먼 경제의 주축

샤먼 시와 진먼 간에는 소삼통(小三通)이 이뤄져 2001년부터 여객선이 운행되고 있다. 샤먼에서 진먼의 수이터우(水頭) 부두로 가는 여객선은 둥두(東渡)와 우퉁(五通) 부두에서 하루 왕복 각각 12회와 6회가 운행된다. 편도 시간이 둥두가 1시간, 우퉁이 30분이지만 요금은 160위안(약 2만7000원)으로 같다. 28일 샤먼 수이터우 터미널의 면세점은 대만과 진먼을 관광하고 돌아오는 100여 명의 중국인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크고 작은 가방과 보따리에 물건이 가득하지만 배를 타기 직전 담배 술 가방 화장품 등 ‘막판 쇼핑열기’가 뜨거웠다.

진먼 현의 농업 관련 기관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다는 좡무진(壯木金·57) 씨는 “진먼 섬에서 군대가 떠난 후에는 중국 관광객이 진먼 경제의 핵심 기둥이 됐다”며 “샤먼과 진먼은 한 가족처럼 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먼 섬을 거쳐 중국과 대만을 오가는 사람은 2004년 40만5000명에서 지난해 129만2000명으로 늘어 5년 만에 약 3배가 됐다.

외국인과 대만인은 여권만 있으면 자유롭게 샤먼과 진먼을 오갈 수 있으며 중국인은 단체 여행으로만 다닐 수 있다. 진먼 섬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여서 진먼 섬을 거쳐 대만으로 가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남편과 함께 13년째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친(琴)모 씨(46)는 “군이 10만 명 이상 주둔할 때는 긴장감은 있어도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요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친 씨는 “서로 교류가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진먼 섬 주민 대부분은 중국과의 통일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긴 했지만 정치적인 의사 표현에 제한이 있는 등 자유가 대만보다 적은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

1958년 중국이 진먼 섬을 폭격했을 때 날아온 포탄을 주워 제작한 ‘포탄 칼’이 진먼의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진먼의 한 업체가 포탄으로 칼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해 전시해 놓았다.
1958년 중국이 진먼 섬을 폭격했을 때 날아온 포탄을 주워 제작한 ‘포탄 칼’이 진먼의 특산품으로 팔리고 있다. 진먼의 한 업체가 포탄으로 칼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해 전시해 놓았다.
○ 대륙에서 쏜 포로 칼을 만들어 팔고, 최전방 초소는 관광지로

1992년 군사경계령이 해제된 진먼은 그 후 ‘군사 주둔지에서 관광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진먼 섬 서북쪽 끝의 ‘마산(馬山) 관측소’는 대만과 대륙의 최전방 부대였던 곳. 특히 해안에 인접한 지하 초소는 길이가 수백 m인 구불구불한 지하 갱도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이 초소에는 과거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시찰 나왔을 때 찍은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다 건너 샤먼의 다덩(大嶝) 섬까지는 1.6km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금은 관측소 터의 일부에 여전히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나 지하 초소 등은 관광지가 됐다. 1년의 의무복무 기간 중 4개월째라는 부대 입구의 초병(20)은 “군부대지만 긴장감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진먼 섬에 군이 가장 많을 때는 15만 명까지 됐지만 지금은 8000명가량이라고 한다. 섬 곳곳에 ‘○○갱도’라는 안내판이 있어 한때 이곳의 전 지역이 군사요새였음을 보여준다.

고량주, 궁탕(貢糖·과자의 일종)과 함께 진먼의 3대 특산품인 ‘포탄 칼’은 진먼 섬의 시대변화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진먼 내 최대 ‘포탄 칼’ 제조업체인 진허리강(金合利鋼)실업은 1958년 8월 인민해방군이 진먼을 폭격할 당시 날아온 포탄 껍데기를 수집해 칼을 제작한 후 중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 직영 칼 판매점에는 포탄 탄피로 칼을 제작하는 과정과 중간재가 전시돼 있으며 당시 주운 것으로 추정되는 빈 포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30년째 ‘포탄 칼’을 제작해온 우쩡페이(吳增培·54) 씨는 “중국이 쏘아댄 포탄으로 칼을 제작해서 중국인에게 판매해 경제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아이로니컬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포탄 칼’이 워낙 많이 제조돼 샤먼 등에서도 판매되다 보니 모든 재료가 당시의 포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없지 않다.

진먼 현의 중심가에 자리한 식당 롄훙루(戀紅樓)의 2층에는 벽 한쪽이 마오쩌둥(毛澤東)의 큰 사진 한 장으로 채워져 있고, 또 다른 벽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대만 청천백일기가 위아래로 나란히 걸려 있다. 도예가이기도 한 식당 사장 왕밍쭝(王明宗) 씨가 ‘양안은 하나’라는 뜻으로 걸어놓은 것이라고 종업원은 설명했다.

진먼에서 샤먼으로 돌아오는 뱃길. 바다 경계상 샤먼으로 넘어오기 직전에 있는 대만 섬인 얼단(二(걸,단,담)) 섬에 ‘삼민주의 통일중국(三民主義 統一中國)’이라는 대형 선전문구가 나오자 관광객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이때 한 나이 지긋한 노인이 “삼민주의 강조하는 것 보니 통일되기 쉽지 않겠군” 하는 말이 들렸다. 양안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진먼(대만)=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양안 무관세…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對中수출 14개 품목 대만과 중복
기술수준 대등… 가격경쟁력 치명타


중국과 대만이 29일 양국 간 무관세로 물품을 교역하는 내용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정식 서명하면서 중국과 대만 시장이 사실상 하나의 시장으로 묶이는 ‘차이완(Chiwan·China+Taiwan) 시대’가 열리게 됐다. 차이완의 탄생은 중국을 최대 수출시장으로 삼고 있는 한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에서 정보기술(IT) 부품, 기계, 석유화학, 자동차 부품 같은 주요 수출 품목을 놓고 한국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만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 한국, 14개 중복 품목이 중국 수출의 60% 차지

한국무역협회가 이날 내놓은 ‘중국-대만 ECFA 협상과 우리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의 대(對)중국 수출품 중 ECFA 체결에 따른 ‘조기 관세 자유화’ 조치의 혜택을 보는 물품은 모두 539개. 이 중 108개가 ECFA 발효 직후부터 무관세 혜택을 보게 되고, 나머지 품목들도 발효 후 2년 동안 3단계를 거쳐 무관세 혜택을 누리게 된다.

한국과 대만은 중국 시장에서 상위 20개 수출 품목 중 전자집적회로, 액정표시장치(LCD), 각종 석유화학 제품, 사무용 기기, 반도체 등 무려 14개 품목이 같을 만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대만과 중복되는 14개 수출 품목이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나 된다. 대만 제품들은 한국 제품과 기술 수준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무관세 혜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한국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력이 비슷하거나 중국 현지법인이 없는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중소 및 중견기업들의 피해가 특히 클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이미 중국 현지에 생산법인을 운영하면서 관세 차이에 따른 불리함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어 이번 ECFA 체결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 근본적인 대안은 한중 FTA

전문가들은 차이완 시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 전략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유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획기적인 기술개발을 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 한 대만 기업들이 누리게 될 관세 혜택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김한성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FTA팀장은 “관세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도 한중 FTA를 통해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회담을 계기로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한 한중 FTA 추진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당시 양국은 ‘한중 FTA 산관학(産官學) 공동연구’를 종료하고 본협상에 앞서 농수산물 등 민감한 분야에 대한 사전협의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공동연구 이후 바로 본협상에 들어가지 않고 민감한 분야에 대한 사전협의부터 진행하기로 해 타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도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는 한중 FTA는 충분한 협의를 거쳐 안정적으로 체결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을 통해 변화되는 사항들을 한중 FTA 추진 전략에 반영할 수 있지만, ECFA 때문에 한중 FTA를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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