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긴축 캘리포니아州정부 “공무원들, 개인 세수타월 갖고 다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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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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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재정적자로 파산 직면한 캘리포니아州 가보니

LA 중심가 랜드마크 주상복합
준공 1년 넘었지만 텅텅 비어
학군 좋은 지역 집값도 반토막

운전면허시험장 月2회 금요휴무
학습부진아 학습지 제공도 중단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 윌셔 가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솔레어’ 1층 매장이 텅 비어 있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어 투자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부동산경기가 악화되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였다. 로스앤젤레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 윌셔 가에 있는 주상복합건물 ‘솔레어’ 1층 매장이 텅 비어 있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어 투자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로 부동산경기가 악화되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였다. 로스앤젤레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실물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고용규모가 16만2000명 늘어 2007년 3월 이후 월간 최고치를 보이는 등 고용 부진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양상을 보인다.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미 전역에 걸쳐 산업생산이 활기를 띠고 소매 판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극심한 재정적자로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여전히 불황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조8120억 달러(2007년 기준)로 미국 전체의 13%, 세계 각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도 8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동아일보는 캘리포니아 주 최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의 현장 경기를 직접 점검했다.

21일(현지 시간) 로스앤젤레스 윌셔 가의 주상복합건물 ‘솔레어(Solair).’ 이 건물은 로스앤젤레스 시내 중심에 들어선 랜드마크로 지난해 2월 준공됐지만 아직까지 1층 상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위층 아파트들도 미분양된 곳이 많아 한밤에 불이 켜진 곳이 드물 정도였다. 일부 아파트 층은 천장의 배선 공사마저 끝내지 못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 전문회사인 리맥스에 따르면 솔레어는 건물 바로 앞에 ‘월셔웨스틴’ 지하철역이 있고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아 투자가치가 높은 부동산이다. 솔레어 내 157m² 아파트가 지난해 한때 100만 달러까지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75만 달러로 급락했다. 그런데도 분양률은 여전히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로스앤젤레스 시 외곽의 부동산 경기는 더 심각하다.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백인 거주지역 콜로나와 발렌시아의 경우 학군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270m² 단독주택 값이 지난해 60만 달러에서 최근 30만 달러로 반 토막 났다.

○ 부동산 중개인 파산 잇따라

무리하게 대출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들이 실직 등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쇼트세일(short sale)’로 집을 넘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쇼트세일이란 주택대출금을 중도에 갚지 못할 경우 은행에 소득 내용을 신고하고 헐값에 다른 매수자를 찾아 집을 파는 것을 말한다. 리맥스의 린다 노 대표는 “부동산 경기가 한창 좋았던 시절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쇼트세일 물량이 현재 전체 거래량의 90%에 이른다”며 “쇼트세일 매도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등 중산층도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거래량 자체도 전성기 때의 절반 이하로 줄면서 부동산 중개 에이전트의 파산도 잇따르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가뜩이나 만성적자에 시달려 온 캘리포니아 주의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8년 회계연도에 260억 달러(약 30조 원)였던 재정적자가 2009 회계연도에는 418억 달러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정부는 작년 7월 재정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교육·복지예산 155억 달러를 삭감하기로 했지만 지출 규모에 비해 세수(稅收)가 워낙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예산절감으로 공공서비스 부실화

막대한 재정적자에 따른 예산삭감은 곳곳에서 공공서비스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던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운전면허시험장(DMV)은 지난해부터 경비절감 차원에서 토요근무제를 없앴다. 또 한 달에 두 번씩 금요일에도 무급휴무를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주민인 더글러스 씨(57)는 “지난주 DMV를 찾았지만 대기 줄이 너무 길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털어놨다.

작년에만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교사 3만 명을 해고하는 등 교육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학습지 전문회사인 대교그룹 미주법인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통합교육구(LAUSD)의 교육예산이 최근 절반가량 줄면서 학습부진아를 위해 실시하던 학습지 제공 서비스도 상당 부분 중단됐다.

▼ LA 한인타운도 직격탄… 한국계은행 2곳 넘어가 ▼

대교그룹 김학형 미주법인장은 “그동안 로스앤젤레스에 집중하던 학습지 사업을 다른 주의 교육구로 확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감원과 경비절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캘리포니아 주의 한 한국계 공무원은 “최근 주정부의 예산압박이 심해지면서 사무실에서 쓸 개인용 수건을 갖고 다니라는 지시가 내려 왔다”며 혀를 내둘렀다.

○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도 위기

미주 최대 교포사회인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역시 캘리포니아 주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2일 현지 언론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북부 샌타클래라에 거주하는 한 50대 한국인 사업가가 은행의 주택 압류통지서를 받고 목을 매 숨진 사실이 보도됐다. 한인타운 내 한국계 은행 14곳 중 2곳은 최근 사실상 부도를 맞아 다른 은행에 인수합병(M&A)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상공회의소 차기민 이사는 “대부분 영세 소상공인인 한인타운 내 교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모국에서 한인타운에 더 많이 투자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강항준 바이오폰티스 대표는 “경기 악화로 유학차 미국으로 오는 기러기 가족들이 크게 줄어들고 투자처를 찾아 한국에서 건너오는 사업가들의 수가 감소한 것도 한인타운 경기를 위축시킨 한 요인”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로스앤젤레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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