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6〉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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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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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위스… ‘순수한’ 뉴질랜드… 한국의 이미지는?

지난해 7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는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축제 ‘월드 아웃게임스(World Outgames) 2009’가 열렸다. 9일 동안 치러진 이 행사에는 세계 100여 개국 대표들과 관광객, 시민 등 20만여 명이 몰렸다.

한국에서 열렸다면 찬반 논쟁으로 시끄러웠을 월드 아웃게임스를 코펜하겐은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코펜하겐 지역 관광청인 ‘원더풀 코펜하겐’ 관계자들은 이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원더풀 코펜하겐’의 베른하르겐 요한센 대표는 “성적 소수자를 위한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함으로써 덴마크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나라가 적지 않다. 특히 스위스, 덴마크, 뉴질랜드는 일찍이 국가 마케팅 제고에 눈을 떠 브랜드 가치를 높인 대표적인 브랜드 강국(强國)이다.

○국제행사 유치해 국가브랜드 알리는 덴마크
브랜드 강소국 덴마크
국제행사 유치 전담조직 운영
코펜하겐은 1년내내 ‘행사중’


“덴마크서 만나요”지난해 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축제인 ‘월드아웃게임스 2009’는 세계에서 20만여 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다. 덴마크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국제 행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 행사는 149건으로 1년 내내 국제 행사가 계속됐다. 사진 제공 원더풀 코펜하겐
“덴마크서 만나요”
지난해 7월 코펜하겐에서 열린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축제인 ‘월드아웃게임스 2009’는 세계에서 20만여 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뤘다. 덴마크는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국제 행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 행사는 149건으로 1년 내내 국제 행사가 계속됐다. 사진 제공 원더풀 코펜하겐
원더풀 코펜하겐의 공보담당관인 울리카 모르텐손 씨와의 인터뷰는 금요일인 지난달 22일 오후 3시 15분에 잡혔다. 인터뷰를 위해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원더풀 코펜하겐으로 들어서자 불이 꺼진 사무실이 많았다. 북유럽에서 금요일 오후는 주 6일 근무 시절 우리나라의 토요일 오후처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는 다른 시간은 일정이 꽉 차서 힘들다며 금요일 오후로 인터뷰를 잡았다. “고맙다”는 인사말에 그는 “한국에서 온 유력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는 한국에 덴마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며 웃었다. 유럽 변방에 있는 인구 50만여 명의 작은 도시 코펜하겐이 국제 행사의 단골 개최지로 부상한 데는 덴마크를 알리겠다는 이런 열정이 있어서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 행사는 149건에 이른다. 규모가 작은 행사도 통상 3일 이상은 진행하기 때문에 1년 내내 각종 국제 행사가 끊이지 않은 셈이다.

원더풀 코펜하겐 안에는 이런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전담 조직이 있다. ‘덴마크에서 만나요’라는 뜻의 ‘Meet Denmark’다. 덴마크가 언론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하는 소규모 행사까지 전담 조직을 동원해 유치하려는 것은 행사 개최가 경제적 파급 효과와 함께 덴마크를 알리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더라도 국제 행사에 참가할 정도면 참가자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덴마크에 호감을 갖고 돌아가면 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고 싶어 할 것입니다.”(마리아네 스카스테 원더풀 코펜하겐 마케팅 디렉터)

덴마크는 2006년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세계화 전략 및 액션플랜을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채택했다. 국가 브랜드 마케팅을 위해 115억 크로네(약 247억 원) 규모의 ‘덴마크 마케팅 펀드’를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적인’ 것을 알리는 스위스
‘요들송의 나라’ 탈피 스위스
마케팅 독립기구 2001년 설립
친환경-현대적 이미지 홍보


스위스 관광청은 취리히 시내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가 그려진 스위스 국기 6개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관광 대국’ 스위스의 관광 행정을 총괄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 정도로 평범한 건물이었다.

스위스 관광청의 주된 역할은 더 많은 관광객이 스위스를 찾게 하는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스위스 관광객들에게 ‘스위스적인 것(Swissness)’을 알리는 것 또한 스위스 관광청에서 하는 일이다. 스위스에 오는 관광객들이 알프스 산맥만 보지 않고 스위스의 창조적이고 현대적인 면을 느끼고 갈 수 있도록 관광 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스위스 관광청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관광객이 그 나라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오랜 기간 뚜렷하게 각인됩니다. 국가 이미지는 관광뿐만 아니라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위스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알리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울스 에버하르트 스위스 관광청 부청장)

스위스는 알프스와 요들송이라는 구태의연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 마케팅을 전담하는 독립 기구를 2001년 만들었다. 스위스의 현재를 알리자는 뜻에서 기구 이름도 ‘현재의 스위스(Presence of Switzerland)’로 지었다. 스위스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국가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이 이곳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스위스의 현재’가 기획한 대표적인 작품이 베이징 올림픽 기간 베이징 시내의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해 개관했던 ‘스위스의 집’이었다. 이곳에는 스위스의 친환경 기술과 에너지 기술, 서비스 산업 등을 알리는 전시관이 들어섰다. 스위스가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들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네슬레, 비토리녹스, 쉰들러, UBS 등 스위스의 대표 기업 12개 회사가 운영비를 냈다. 스위스의 금메달리스트를 이곳으로 초청해 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 덕분에 올림픽 기간에 13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최초로 국가 마케팅 나선 뉴질랜드
국가마케팅 원조 뉴질랜드
시장조사로 외국인 기호 파악
맞춤형 홍보프로그램 개발

청정 관광지뉴질랜드의 퀸스타운 글레노키를 찾은 관광객들이 말을 타고 강을 따라 가고 있다. 이 승마길은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파라다이스와도 연결돼 있다. 뉴질랜드는 이처럼 청정 자연과 다양한 레저활동에 초점을 맞춘 홍보로 관광 수입을 10년 만에 60% 이상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진 제공 뉴질랜드 관광청
청정 관광지
뉴질랜드의 퀸스타운 글레노키를 찾은 관광객들이 말을 타고 강을 따라 가고 있다. 이 승마길은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인 파라다이스와도 연결돼 있다. 뉴질랜드는 이처럼 청정 자연과 다양한 레저활동에 초점을 맞춘 홍보로 관광 수입을 10년 만에 60% 이상 늘리는 데 성공했다. 사진 제공 뉴질랜드 관광청
뉴질랜드 정부는 1990년대 중반 설문조사 등을 통해 뉴질랜드의 목가적인 이미지가 실제 관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카스 카터 뉴질랜드 관광청 커뮤니케이션 총괄매니저는 “뉴질랜드의 모든 장점을 중구난방으로 나열해 온 마케팅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관광청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처와의 협업을 통해 국가 이미지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상대로 한 시장조사를 통해 외국인들의 기호를 파악했다. 홍보 슬로건 개발은 세계적 광고 전략사인 M&C사치에 맡겼다. 이를 통해 1999년 ‘100% 순수(Pure) 뉴질랜드’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세계에서 처음 시도되는 국가 브랜드 마케팅이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마케팅 첫해에만 약 4100만 뉴질랜드달러(약 330억 원)를 글로벌 홍보에 투입했다. 국내 여행사, 음식점, 숙박업소와도 적극적으로 손잡고 이들이 ‘100% 순수’라는 슬로건과 로고를 활용하도록 이끌었다. 홍보 첫해에만 뉴질랜드를 찾은 외국인 수는 10%, 관광수입은 20%가 증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순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100% 순수 어드벤처’ ‘100% 순수 서스펜스’ 같은 슬로건도 등장했다. 시장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은 캠핑, 번지점프 같은 뉴질랜드의 활동적 프로그램에 큰 매력을 느낀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카터 총괄매니저는 “지난해로 10주년을 맞은 ‘순수’ 마케팅은 관광산업뿐 아니라 뉴질랜드산 제품 수출과 유학생 증가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코펜하겐·취리히=황진영 기자buddy@donga.com

오클랜드=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한국 브랜드가치 높이려면
“정보기술 강국 이미지 장점… 세계 IT박람회 개최해볼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세계 15위권이지만 국가 브랜드 순위는 그보다 한참 아래다. 지난해 조사한 안홀트 국가브랜드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50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쳤다. 한국이 경제력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브랜드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국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한국이 세계에 잘못 알려지거나 덜 알려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홀트 국가브랜드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원인은 국제사회 기여 미흡, 정치·사회적 불안, 북한과의 대치상황 등이 꼽혔다.

국내 PR 및 브랜드마케팅 전문가들은 정보기술(IT) 강국 이미지를 앞세우고 글로벌 기업을 육성해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하면 국가 브랜드 가치도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PR협회가 최근 PR 및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국가 브랜드가 가진 강점은 ‘IT 강국’ ‘세계적인 기업’ ‘경제 발전’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국가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기회 요인으로 IT 수준 향상과 지속적인 글로벌 기업 위상 강화, 한국 기업의 기술력 증대 등을 언급했다. 또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역량과 앞으로의 기회 요인 등을 종합할 때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세계적인 IT 박람회 개최’를 제안했다.

설문조사를 주관한 한은경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삼성, LG,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은 해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으로 한국의 이미지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며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활동에서 정부는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을 수용하는 범위에서 다양한 협력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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