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4박5일 설득’ 카르자이 결심 이끌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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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 없인 진전없어
나라를 먼저 생각하시오”
외신 “홍차 수백잔 쓰였다”

“재검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완강하게 버티던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마음을 바꾼 사람은 존 케리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다. 두 사람의 4박 5일간 만남에 많은 양의 양고기와 수 갤런의 홍차가 쓰였고 ‘때로 강압도 동원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케리 위원장이 카르자이 대통령의 재검표 결과 수용 거부 소식을 전해들은 건 16일 저녁. 마침 아프간 실태 파악차 카불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 주 출신 미군 장병들과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케리 위원장은 예고도 없이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와 카르자이 대통령을 찾아갔다. 이튿날에는 공식일정까지 취소하고 다시 찾았다. 면담이 밤늦게까지 이어졌지만 카르자이 대통령은 “유효표 가운데 130만 표를 무효화하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8일에도 칸다하르 미 공군기지와 해병부대를 방문한 뒤 케리 위원장은 카불로 돌아와 카르자이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아프간 독립 선거관리위원회와 유엔 측 선거민원위원회 관계자가 배석한 이날 만남은 약간의 진전이 있었지만 해법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19일 파키스탄 일정을 반나절 만에 서둘러 마치고 카불로 돌아온 케리 위원장은 카르자이 대통령에게서 “20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결선투표 수용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다음 날(20일) 오후 대통령은 다시 흔들렸다. 많은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 케리 위원장은 대통령궁 내 정원을 장시간 산책하면서 막판 설득을 시도했다. “결선투표 수용은 합법적인 승리를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결선투표 없이는 아프간도 미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다독였다.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자신도 오하이오 주에서 부정투표 논란이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할 경우 정치 분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생각에 포기했다는 일화도 털어놓았다. 마침내 카르자이 대통령은 마음을 정리하겠다며 이슬람 사원을 다녀온 뒤 그날 오후 4시 50분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결선투표 참여를 선언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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