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재계 “정치헌금 계속 내야 하나…”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9분


헌금 97%가 자민당에 집중
여야 바뀌어 존속여부 고민

하토야마 내각이 출범하면서 일본 경제계가 정치헌금의 존속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민주당은 정치헌금 폐지를 내세우고 있고 경제계 요청을 충실히 정책으로 반영해온 자민당은 이번에 무너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참에 정치헌금을 없애자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일본 기업과 단체들은 2004년부터 재계 대표단체인 경단련(經團連)이 매년 실시하는 정당 정책평가를 기준으로 정치헌금을 해왔다. 자민당이 정책평가에서 매번 ‘A학점’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헌금을 사실상 독식했다. 실제로 2007년 경단련 회원 기업 및 단체의 정치헌금액을 보면 자민당이 29억 엔이었고 민주당은 8000만 엔에 불과했다. 정치헌금의 97%를 자민당이 가져간 것이다.

정권 교체로 여야가 뒤바뀐 상황에서 재계는 자민당에 계속 정치헌금을 몰아줄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제조업 근로자파견제 원칙 금지, 온실가스 배출량의 과도한 삭감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민주당을 지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정치헌금 관행을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마침 민주당도 3년 후부터 기업 등 단체헌금을 없애기로 선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헌금을 없앨 기회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냉전체제 아래에서는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보험료’로서 냉전 후에는 ‘사회공헌’이라는 명분으로 정치헌금을 내왔다. 하지만 ‘준조세’에 가까운 정치헌금은 기업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단련 안에서는 진정한 사회공헌을 위해서라면 정치헌금보다는 정책 제언을 위한 싱크탱크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반세기 가까이 쌓아온 자민당과의 인연을 하루아침에 끝낼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단련은 1993년 정권교체로 들어선 호소카와 내각 이후 정치헌금을 사실상 폐지했다가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관계 회복에 애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경단련은 현행 정치헌금 방식은 투명한 절차에 따라 실시되고 있어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기업과 단체들이 11월 발표되는 정책평가에 따라 정치헌금을 계속 내놓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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