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본 어디로 가나]<上>한일관계 훈풍 불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31일 02시 59분



“야스쿠니 참배 반대”… 과거사 - 병력증강 ‘자극’서 ‘자제’로
하토야마, 당대표된 뒤 방한
동아시아공동체 등 협력 강조
재일동포 참정권 진전 기대
‘독도 문제’는 걸림돌 될수도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참배하러 갈 생각이 없습니다. 각료들에게도 자숙을 요청하겠습니다.”
11일 도쿄 당사에서 외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선거기간에 아시아 중시, 특히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한일관계가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전략적 일한관계를 구축하는 의원모임’을 중심으로 한일 파이프라인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3월 창립총회를 가진 이 모임은 하토야마 대표가 고문이고 회장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 등 15명이 소속돼 있다. 소장파 의원이 많다. 창립총회엔 권철현 주일 한국대사가 초청돼 한일관계 발전방향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토야마 대표가 6월 초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러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이 모임 소속 의원 9명이 수행했다.
자민당 정권에서도 한일관계는 좋았고, 특히 아소 다로(麻生太郞) 정부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다. 아소 내각이 들어선 지난해 9월 이후 이 대통령과 아소 총리는 7차례나 정상회담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대북문제에서도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자민당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롯한 역사인식,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중심으로 한 우경화,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 등에서 한국의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토야마 대표의 한일관계 중시는 5월 중순 민주당 대표에 선출된 직후 첫 외국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엔 의식적으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 대통령을 만난 후 기자회견에선 한국 정부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상대국 정부를 의식해 야당 대표를 직접 만나지 않는 외교관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면담이 성사된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으로선 적절한 투자였던 셈이다.
그와 함께 민주당 3인방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간사장도 한국에 우호적이다. 오카다 간사장은 지난달 말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민주당 정권이 되면 한일관계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일본의 주요 정당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한국 특파원단을 따로 초청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정부는 하토야마 차기 총리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초청해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새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상징적 효과와 함께 역사문제 등에서의 전향적 자세를 공식 확인하는 실질적 효과를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하토야마 차기 내각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한 담화다. 민주당은 또 일본의 전력 보유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헌법9조 개정에 반대하는 의원이 많고, 핵무장과 자위대 증강, 집단적 자위권 등 한국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에 부정적이다. 한일관계가 평소에 잘 나가다가도 야스쿠니 신사나 역사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에 부닥쳐 주기적으로 삐걱거렸던 점을 감안하면, 하토야마 시대에는 적어도 국민감정을 격화시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양국관계가 후퇴하는 일은 상당부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발길이 끊기고 재일동포 참정권 문제가 가시적으로 진행된다면 한일관계는 더 전진할 수 있다. 답보 상태에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그는 “서로 윈윈 하는 방향으로 전향적으로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출범과 함께 과거사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고 한일관계가 단시일에 대폭 좋아질 것이란 기대는 너무 성급한 것이다. 독도영유권과 관련해 민주당은 일본에 영토주권이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 영토문제에선 일본도 여야와 이념의 차원을 넘어 한목소리다. 언제든 이 문제는 한일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 다행히 하토야마 대표는 영토문제의 민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달 초 동아일보에 기고한 ‘나의 정치철학’에서 “(영토 문제는) 서로 이야기할수록 국민감정을 자극해 민족주의의 격화를 부를 수 있다. 지역통합을 진행하는 가운데 해결할 수밖에 없다”며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의 틀 속에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지향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적어도 독도와 관련한 선제적 도발행위는 없을 것이란 기대가 가능한 대목이다. 재일동포 참정권 문제도 얼마나 빨리 해결될지 궁금하다. 민주당은 내년 참의원선거까지는 정치사회적 의견충돌을 유발할 만한 일은 가급적 벌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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