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제대화에서 중국 고전 명구가 많이 등장했다. 재미난 것은 중국 고전을 인용한 사람들이 중국 측 지도자가 아니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국 장관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한때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선은 공산당 일당독재, 인권 탄압, 불법복제 등 부정적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상대방에게 익숙한 고전을 인용해 내 생각과 의도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의 뜻을 전하는 외교적 수사법이다. 미국은 중국이 자신과 함께 나아갈 동반자임을 인정했다.
○ 맹자 인용한 오바마 대통령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맹자(孟子·그림) 중 ‘진심(盡心)’ 하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길로 변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사람은 자주 만나야 정이 든다. 왕래가 드물면 관계가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도 자주 왕래하고 상호 소통의 큰길을 만들자’는 뜻에서 맹자를 인용했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맹자 원문의 마지막 한 구절이다.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今茅塞子之心矣)!’ 해석에 따라 중국이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라는 표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손자병법의 한 구절인 ‘풍우동주(風雨同舟)’를 중국어로 인용해 중국 지도자들을 감동시켰다. ‘비바람이 불어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뜻이다.
○ 동양-서양의 경계는 더 이상 무의미
이번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급변하는 세상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월가의 투자은행들은 문을 닫았고 잘나가던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제는 미국이 혼자서 세계를 끌고 가기에는 버거운 시대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미국 기업의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지다. 중국 쪽에서도 미국은 중국의 최대 소비시장이다. 두 나라가 이제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 인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는 과거 미국과의 외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쳤다.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되 서로 다른 의견은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뜻이다.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상호 협력을 해야만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라는 저우언라이의 철학은 이제 현실이 됐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는 이제 무의미하다. 서양은 물질이고 동양은 정신이라는 이분법도 유효하지 않다. 우리는 동양과 서양, 좌익과 우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만남의 시대에 어느 하나만 옳다고 고집하다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중국 고전의 향연으로 끝난 미중 전략경제대화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지도자조차도 중국 고전 몇 구절쯤은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도 예외가 아니리라.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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