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리포트]美, 경기침체 속 자원봉사 더 늘었다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미국판 환난상휼’
직장 구하기전 새 세상 경험
청년층 824만명으로 늘어
“어려울때 내 고장부터 돕자”
지역밀착형 봉사 확산 추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해 4월 자원봉사 활동에 57억 달러를 지원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경기가 나빠진 상황에서도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가하려는 신청자들이 급증하면서 금액을 늘려 지원하게 된 것. 그는 이 자리에서 시카고의 한 시민단체에서 일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나는 봉사를 통해 나를 포용한 지역사회와 소중한 시민의식, 내가 찾고자 한 목표를 찾았다”며 “지금 더 많은 미국인이 그들의 지역사회를 돕는 데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국가봉사프로그램 조직인 ‘국가와 지역사회봉사단(Corporation for National and Community Service·CNC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자원봉사자는 총 61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6.4%에 이르렀다. 이는 2007년보다 10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경기 침체기에는 자원봉사자가 줄어든다는 통념을 뒤집어 눈길을 끈다.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글로벌 경기침체도 미국인들의 자원봉사 열기를 꺾지 못한 것이다.》

○ 글로벌 침체에도 자원봉사 행렬 줄이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채플힐에 사는 존 마이클 라이버스(69)와 퍼트리샤 데블린 라이버스 씨(70) 부부는 자원봉사활동으로 노년이 즐겁다. 라이버스 씨는 매주 두 차례 현지 라디오방송국 WUNC의 신문 읽기 프로그램인 트라이앵글 뉴스페이퍼 리딩 서비스에 출연한다. 시각장애인이나 환자 등 신문을 보지 못하거나, 읽기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구성진 목소리로 그날의 신문을 읽어준다. 그는 또 고교 진학을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도 가르친다. 퍼트리샤 씨는 한 지역 병원의 호스피스 사무실에서 각종 행정업무를 돕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1400시간 이상 자원봉사활동을 해 ‘올해의 자원봉사자 상’을 수상했다.

CNCS가 발표하는 자원봉사 관련 통계와 보고서는 미국의 자원봉사 추세를 파악하는 데 가장 유용한 자료 중 하나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18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80억 시간 이상을 봉사활동에 썼다.

CNCS는 “이는 돈으로 환산하면 1620억 달러의 가치에 해당한다”며 “경기 불황기에 자원봉사자 수가 늘어난 것이 지난해 조사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평균적으로 집을 소유하고 직장이 있는 사람들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집 압류가 늘어나는 경기 침체기에는 자원봉사자가 감소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기부금액이 최근 53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가운데 자원봉사자 지원자가 늘어난 점에 주목했다.

사회활동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에게 ‘지역사회를 위해 좀 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요청한 후부터 전국적으로 자원봉사 운동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젊은층으로 확산되는 자원봉사

제이미 라이트 씨(34)는 올해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졸업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취업이 여의치 않자 그는 금융분석가의 꿈을 잠시 접고 지역 사회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로 했다.

라이트 씨는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프로그램 운영 등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해외봉사 프로그램인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올해 상반기 지원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늘었다. 대학 졸업생을 재정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 보조교사로 보내는 교육 프로그램(Teach for America)에는 올해 상반기에만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가량 늘어난 자원봉사자가 지원했다.

청년층 자원봉사자(16∼24세)는 2007년 780만 명에서 지난해 824만 명으로 44만 명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자원봉사자가 100만 명가량 늘어났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를 청년들이 차지한 것. CNCS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려는 청년이 늘어난 것과 관련해 “그들의 신념 체계에 ‘봉사’가 자리잡은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대학 신입생들의 태도 변화를 연구하는 미국 고등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입학한 대학 신입생의 69.7%가 ‘남을 돕는 봉사활동이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1970년 이후 가장 높은 응답률이다. 오렌지 카운티 리터러시 카운슬의 프로그램 기획자인 켈리 데이비스 씨는 “요즘처럼 취업 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사소한 일을 하는 것보다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겠다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그들은 봉사활동에서 얻는 경험이 (내키지 않는 직장에 취업해 받는) 소득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내가 받은 축복, 지역사회에 돌려준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주도(州都)인 롤리에서 I-40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30분가량 달리면 채플힐이라는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도시가 나온다.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숲으로 둘러싸인 채플힐은 ‘부자 동네’로 꼽힌다. 하지만 이곳이 속한 오렌지 카운티는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이 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오렌지 카운티는 맨해튼, 뉴올리언스, 페어필드, 워싱턴에 이어 다섯 번째로 소득차가 큰 곳이다. 실제로 채플힐 시내를 걷다 보면 노숙인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쉼터’도 시내 한가운데에 있다.

지난달 14일 오후 채플힐 인근의 작은 도시 카버러에 있는 비영리 사회봉사단체 IFC(InterFaith Council for Social Service)의 2층 회의실. 이날 IFC가 마련한 자원봉사자 모집 설명회에는 20여 명의 지원자가 참가했다. 10대에서 60대, 중학생 대학생 교사 은퇴자 등 연령층과 직업이 다양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학생 앤절라 미스트러 씨는 “그동안 학교생활이 바빠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 중 약 2000만 명(8.5%)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개선하는 일에 자원봉사자로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1500만 명(6.5%)과 비교할 때 1년 새 500만 명이 이웃 문제에 관심을 갖고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오렌지 카운티의 은퇴자 자원봉사 프로그램 운영자인 캐시 포터 씨는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잘 모를 것”이라며 “자원봉사자들은 자기가 받은 혜택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채플힐·카버러(노스캐롤라이나)=이강운 차장 kwoon90@donga.com

▼“자원봉사로 만나는 빈민 삶 책으로 아는 것과 차원달라”
봉사조직 IFC 크리스 모런 국장▼
IFC 음식지원가구 106% 급증
“사회안전망이 다 구제 못해”

“경기 침체로 각 지역 비영리 봉사단체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고 있습니다. 실직 등으로 생활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사 및 쉼터를 제공하는 사회봉사단체의 역할이 커진 셈이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카버러에 있는 비영리 사회봉사조직 IFC의 크리스 모런 국장(사진)은 “자원봉사자들이 없으면 이런 서비스의 제공이 원천적으로 힘들게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1963년에 설립된 IFC는 노숙인과 빈민들에게 음식과 숙식 등 쉼터, 진료, 직업훈련 등을 제공하는 비영리 사회봉사단체. 현재 10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런 국장은 “사회 안전망이 지역사회의 빈민들을 모두 다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채플힐 카버러를 포함한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빈민 구호 및 재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IFC에 도움을 요청하는 주민이 늘어나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IFC에서 식료품을 조달한 가구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2191가구에 이른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의 1068가구보다 106% 급증한 것. 또 IFC의 무료 급식을 이용한 사람들도 같은 기간 7만2778명으로 11%가량 늘었다. “오전에 가득하던 식료품들이 늦은 오후가 되면 거의 다 없어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런 국장은 “노숙인 등 우리 사회의 소외된 사람을 진정 이해하려면 그들을 직접 만나 도와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며 “빈민들의 삶을 책으로 이해하는 것과 자원봉사를 통해 그들을 만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취업에 실패한 대학 졸업생들,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사람들이 자원봉사의 길에 많이 나선다고 했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대부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싶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모런 국장은 “많은 자원봉사자는 거꾸로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 고맙다고 한다”며 “자원봉사로 흘린 땀의 최고의 보상은 자원봉사활동을 끝낸 후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난 1년간 KT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미국 듀크대에서 연수한 산업부 이강운 차장의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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