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흑해 크림반도서 첩보戰

  • 입력 2009년 5월 19일 02시 55분


그루지야戰후 세대결 요충지

7월 미-우크라 합훈 앞두고 함정 파견 등 물밑 신경전

흑해의 요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에서 미군과 러시아군이 첩보수집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 힘대결

지난해 8월 그루지야 전쟁 직후 크림반도 주위에는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루지야 지원을 자처한 미 해군 함정들이 몰려들자 전쟁에서 승세를 굳혔던 러시아 해군이 대결을 불사한다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유럽 외교관들은 그루지야에 이어 크림반도에서도 전쟁이 확산될 것으로 우려했지만 불상사는 없었다. 미 해군은 정전협상이 진행되자 흑해를 빠져나갔다.

크림반도는 제정러시아와 옛 소련이 남방 진출을 하는 데 역할을 했다. 1856년 크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군은 이 반도를 되찾기 위해 주변국과 수시로 충돌했다. 옛 소련은 1921년 이 지역에 자치공화국을 세우고 소련 영토로 병합했다. 1954년 우크라이나 출신인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제1서기는 이 지역을 소련의 한 공화국이던 우크라이나에 넘겼다.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분리 독립한 뒤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매년 임차료를 내고 크림반도 남부 세바스토폴 항구 일대를 흑해함대 기지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 친(親)서방 정권인 빅토르 유셴코 정부가 출범한 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반환과 사수 문제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벌여 왔다.

러시아 일간 베르시야는 지난해 신냉전의 조짐이 일어난 후 크림반도가 미군과 러시아군의 첩보 전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15일 보도했다. 유셴코 대통령이 물러나는 내년 이 지역에서 미-러 양국이 힘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첩보전도 가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의도 엿보기

크림반도는 미-러 양국의 대결 우려로 올해에도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리아노보스티 등 러시아 언론들은 올해 7월 실시되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연합 군사훈련을 계기로 크림반도가 긴장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 해군과 우크라이나 해군은 1997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시브리즈(Sea breeze)’라는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그루지야 전쟁을 치르고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올해에는 양국 해군의 기동 연습을 통상의 훈련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들의 견해다.

러시아 군사전문가 세르게이 트레닌 씨는 “이번 훈련을 통해 러시아는 미국이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지역을 탐내고 있는지 가늠할 것이며, 미국은 러시아군의 세력 확장 의지가 얼마나 큰지 시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흑해 연안의 ‘물밑 첩보전’은 벌써부터 가열되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군이 크림반도에다 군 기지를 건설할 것이라는 첩보에 러시아군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미군도 6함대 소속 함정을 수시로 흑해에 보내 세바스토폴 항에 정박한 러시아 해군의 동태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군은 감청 방지 장비를 총동원해 미군과의 첩보전에 대비하고 있다고 군 소식통들이 전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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