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감기약-진통제 소매점서 파는데 한국은 왜?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1년 넘게 논란만…

현정부 중점 추진했지만 아직 1건도 추가허용 안돼

약사는 반대 의사는 긍정적, 복지부 소극적 태도로 표류

일요일인 5일 새벽 머리가 지끈거려 잠을 깬 회사원 김모 씨(36·여·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는 진통제를 찾으려고 집안의 모든 서랍을 뒤졌다. 하지만 약은 없었고 두통은 더 심해졌다. 오전 3시. 집 근처 약국은 모두 문을 닫았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진통제를 판다던 게 언젠데 왜 아직도 안 되는 거야.” 김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시행을 약속했던 두통약, 소화제 등 단순 약품의 약국 외 판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민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관련 분야의 시장 확대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이유를 들어 이 제도의 시행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지만 보건복지가족부의 미온적인 태도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는 양상이다.

○ 현 정부 들어 한 건도 허용 안돼

OTC(Over The Counter)는 특별히 안전성이 높이 인정돼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이 아닌 일반 소매점에서 팔 수 있도록 한 약을 부르는 미국 용어다. 한국에선 금연보조제, 스프레이 파스, 거즈 및 소독제, 저(低)함량 비타민제 등만 일반 소매점 판매가 허용돼 있다.

일반 소매점에서 팔 수 있는 단순 약품의 확대는 이명박 정부가 처음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안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중점과제로 검토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감기약 등의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추가로 허용된 약품은 한 건도 없다. 까스활명수 같은 소화제는 물론이고 ‘고(高)함량 비타민제’로 분류되는 박카스도 여전히 약국에서만 살 수 있다.

주관부처인 복지부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을 일반 공산품과 같이 취급할 수 없다”며 단순 약품 확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한국은 약국이 슈퍼마켓보다 많아 국민 불편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유일호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국의 1만8152개 약국 가운데 오후 10시 이후 운영하는 약국은 1640곳(9%)뿐이었다. 동네 약국끼리 순번을 정해 일요일에 문을 여는 곳은 4129곳이었다. 몸이 아파도 휴일이나 밤늦은 시간엔 약을 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 약사는 반대, 의사는 긍정적

선진국들은 대부분 단순 약품의 일반 소매점 판매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약국당 인구가 2300∼2400명으로 한국과 비슷한 일본은 소화제 정장제 지사제 코막힘개선제 등 400개 품목을 슈퍼나 편의점에서 팔고 있으며 올해 6월부터는 감기약과 해열진통제의 약국 외 판매도 허용한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일반 상점에서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해열제 등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약품 오남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이 제도의 시행에 반대하고 있다. 동네 소규모 약국의 경우 일반 의약품 판매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도 약사단체의 반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2005년 한 해 동안 생산된 박카스는 1163억 원어치로 일반의약품 생산액의 4.4%, 까스활명수는 386억 원(1.5%), 판피린에프는 246억 원(0.9%) 등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대체로 확대에 긍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일반 의약품은 국민의 편익을 고려해 약국 외 판매가 허용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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