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테러 생존자 “기억조차 하기 싫다” 충격에 말문 못열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18일 03시 00분



■ 예멘 테러 생존자 12명 어제 귀국

몸전체 화상… 얼굴은 부상으로 퉁퉁 부어

부상자 2명 휠체어 탄채 곧바로 병원 후송

관광객 “여행사서 위험정보 들은적 없다”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예멘 폭탄테러로 사망한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인 관광객 12명이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예멘을 출발해 두바이에서 하루를 묵은 뒤 이날 오후 도착한 이들은 한결같이 굳게 입을 다물었다.

부상 정도가 심각한 홍선희 씨(54·여)와 박정선 씨(40·여)는 입국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휠체어를 탄 채 곧바로 앰뷸런스에 실렸다. 두 환자는 서울의 서울성모병원과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들은 사고 당시의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충격 후유증으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질문이 계속되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홍 씨는 녹색 모자에 흰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왼쪽 뺨은 부상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대구에 산다는 60대의 이모 씨는 “사고 지역이 위험하다는 정보를 미리 전달받은 바 없어 예멘 유적지 관광을 자유롭게 하다 폭탄 테러를 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미 정부 합동조사단에 사고 정황을 다 말해서 더 전할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예멘 자살폭탄테러 부상자 귀국중동 예멘에서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당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17일 오후 충격에 빠진 모습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사고를 당한 관광객 18명 중 사망자 4명과 여행사 관계자 2명을 제외하고 부상자 2명을 포함한 12명이 이날 귀국했다. 인천=변영욱 기자
예멘 자살폭탄테러 부상자 귀국
중동 예멘에서 자살폭탄 테러 공격을 당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17일 오후 충격에 빠진 모습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사고를 당한 관광객 18명 중 사망자 4명과 여행사 관계자 2명을 제외하고 부상자 2명을 포함한 12명이 이날 귀국했다. 인천=변영욱 기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귀국한 50대 여성 김모 씨는 “관광을 가지 않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권모 씨(51)가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호텔로 돌아와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멘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사로부터 이 지역이 위험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진 박 씨는 내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 씨를 이송한 인천중부소방서의 한 구급대원은 “불안 증세가 매우 심해서 심적 안정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고 전했다. 박 씨 가족들은 “등, 엉덩이, 다리 뒤쪽, 머리 뒷부분이 화상을 입었고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화상 치료를 위해 한강성심병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한편 예멘에 도착한 유족들은 예멘 군 중앙병원 시신안치소에서 오열을 터뜨렸다. 숨진 김인혜 씨(64)의 남편 윤구 전 문화일보 논설주간은 아내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다 “차마 더는 못 보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유족들은 시신 확인 뒤 주예멘 한국대사관에서 곽원호 대사를 만나 시신이 조속히 한국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여행사 관계자는 “도의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시신 운구 비용, 유족들의 이동 비용 등 각종 경비만도 수천만 원에 달해 직원이 6명인 소규모 여행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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