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꾼 2인 링컨 - 다윈, 오늘 탄생 200주년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링컨 前 대통령이 피격 당시 입었던 피묻은 코트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암살된 장소인 워싱턴 포드극장이 링컨 탄생 200주년 하루 전날인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총 2500만 달러를 들여 보수공사를 마친 포드극장은 재개관 기념으로 이날부터 링컨의 일생을 다룬 연극을 올린다. 극장 직원이 링컨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당시 입고 있던 피 묻은 코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코트는 로비에 전시됐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링컨 前 대통령이 피격 당시 입었던 피묻은 코트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암살된 장소인 워싱턴 포드극장이 링컨 탄생 200주년 하루 전날인 11일 다시 문을 열었다. 총 2500만 달러를 들여 보수공사를 마친 포드극장은 재개관 기념으로 이날부터 링컨의 일생을 다룬 연극을 올린다. 극장 직원이 링컨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당시 입고 있던 피 묻은 코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코트는 로비에 전시됐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링컨이 태어난 오두막집. 1865년 헐렸다가 19세기 말 추모자들이 복원했다. 1911년에는 이 오두막집을 에워싸는 형태로 기념관이 건설됐다. 호전빌=이기홍 특파원
링컨이 태어난 오두막집. 1865년 헐렸다가 19세기 말 추모자들이 복원했다. 1911년에는 이 오두막집을 에워싸는 형태로 기념관이 건설됐다. 호전빌=이기홍 특파원
“오바마 통합 리더십의 원조” 링컨 재평가 열기

쇠사슬 차고 끌려가던 노예보며 키운 링컨의 꿈

오바마 시대 열리며 분열 넘어 포용정치로 만개

외진 생가 기념관엔 한파 뚫고 방문객들 줄이어

《1809년 2월 12일 에이브러햄 링컨과 찰스 다윈이 태어났다. 두 거인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이들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나는 어쩌다 백악관을 잠시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켄터키 주 호전빌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생가(生家)에 조성된 국립기념관 입구 벽면에 새겨 있는 링컨 어록이다. 앞엔 링컨의 부모와 아기 링컨, 누이가 손잡고 있는 가족 동상이 서 있다. 남루한 옷차림들이 소박한 19세기 초 농민 가정 모습 그대로다.

11일 오전, 겨울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링컨 생가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자녀들에게 링컨의 생애를 설명해주는 부모들의 말 중간중간 ‘humble(겸손한)’이란 단어가 자주 들렸다. 연간 20만 명 정도였던 방문객이 지난해엔 16%나 증가했다고 한다.

방명록과 방문객들이 세운 차 번호판에선 캘리포니아, 메인, 조지아 등 수천 km 떨어진 지명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파를 뚫고 이 작은 마을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힘은 무얼까.

1809년 2월 12일 링컨이 태어난 오두막집은 대리석 건물 안에 복원되어 있다. 가로 4.8m 세로 5.4m의 초라한 원룸 형태다.

“링컨 부모 정도면 중산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목수인 아버지가 200달러를 주고 348에이커(1.4km²)의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소유 분쟁 중인 땅이어서 링컨이 두 살 때 빼앗겨 16km가량 떨어진 노브 크릭으로 이사 가야 했다.”(기념공원 안내원 로드 블랜턴 씨)

링컨이 2∼7세를 보낸 노브 크릭의 집은 당시 주요 교역로 길목에 위치해 있었다.

“링컨 집 앞으로 쇠사슬을 차고 남부로 팔려가는 노예 행렬이 자주 지나갔다. 미영전쟁에서 돌아오는 지친 병사들도 지나갔다. 어린 링컨은 그런 모습을 보며 노예제와 전쟁의 참혹함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링컨과 노예제를 연구하는 국립공원 교육전문가 스티브 브라운 씨)

어린 링컨은 인근 플랜테이션 농장주 아들인 친구 집에서 노예들의 고된 노동을 목격하기도 했다. 부모의 영향도 컸다. 당시 링컨이 살던 동네에는 16세 이상 백인은 1627명인데 노예는 1007명에 달했다. 링컨 집 정도의 경제력이면 대부분 노예를 부렸지만 노예제를 반대하는 부모는 그러지 않았다.

기념관의 샌디 브루 자원관리팀장은 “링컨은 매우 동정심이 많은 소년이었고 그런 성품은 따뜻한 리더십으로 표출됐다”며 “하지만 링컨의 겸손함과 동정심은 나약함과는 달랐다. 연방체제의 수호와 노예해방이라는 원칙과 이상에 있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862년 링컨이 노예해방 선언을 하려 하자 내각은 만류했다. 당시 링컨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가에 전시된 어록에 남아 있다.

“만약 내가 물러선다면, 나는 당장은 물론 영원히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링컨은 정치 생활 초중반기엔 완전한 인종평등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몇 차례 내비쳤다. 이에 대해 브루 팀장은 “링컨의 또 다른 장점은 끊임없이 생각이 진화했다는 점”이라며 “남북전쟁 초기엔 노예를 아예 아프리카로 돌려보내자는 생각도 했지만 이후 점점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요즘 미국은 링컨 열기가 최고조로 오르고 있다. 특히 링컨 리더십을 사표(師表)로 삼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이 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 전역에서 기념행사가 열리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 주 스피링필드를 방문한다.

인디애나 주에서 온 로버트 레일리(42) 씨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8년간 링컨을 말하는 정치인은 별로 없었고 나라는 레드 스테이트와 블루 스테이트로 갈갈이 찢겼다. 그러나 ‘통합’을 내세운 오바마가 라이벌들을 과감히 내각에 품는 걸 보고 링컨식 리더십을 다시 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링컨 교육전문가 브라운 씨는 “링컨 당시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 사회적 분열이 심했다. 하지만 링컨은 자신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비난했던 사람들까지 중용했다. 그들은 처음엔 링컨을 깔봤지만, 나중엔 진정한 링컨의 사람이 됐다”고 말했다. 겸손함,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 결단력, 포용력, 통합의 정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갈망이 19세기 링컨을 오늘로 살려내고 있었다.

호전빌=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과학은 다윈의 손을 들어주고

종교는 ‘창조론과 공존’ 모색

美 “창조론도 학교서 가르쳐야” 계속 제기

英 “진화론은 과학적 영역”… 큰 논란 없어

中 병행 교육 속 “진화론만 유일한 세계관”

2일 탄생 200주년을 맞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한마디 말로 신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창조했다고 믿어온 기독교 중심의 서구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모든 생물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담은 ‘종의 기원’은 1859년 처음 출간됐지만 아직도 다위니즘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책은 1872년까지 판본을 다섯 차례나 바꿔가며 기존의 신학적, 종교적 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전 인구의 60%가 창조론을 믿고 있는 미국에서는 여전히 진화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인 NPR는 최근 “과학은 이미 다윈이 승자임을 선언했지만, 150년 전에 시작된 진화론과 창조론 간의 논쟁은 중단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 대법원은 1968년 일부 지역의 ‘진화론 교육 금지’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1987년에는 학교에서 창조론을 믿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금지했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유럽에선 큰 논란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립학교는 진화론을 가르친다.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럽의 가톨릭과 개신교는 진화론을 거부하지 않는다. 일부 과학자는 창조론 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아직 초중고교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며, 이를 둘러싼 논란도 별로 없다.

다윈이 태어난 영국이나 진화론에 대한 지지가 강한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다윈 추모 열기가 뜨겁다.

다윈의 고향인 슈루즈베리에서 열리고 있는 다윈 200주년 축하 페스티벌의 주관자인 밥 블룸필드는 “과학은 어떻게(how)라는 질문에, 종교는 왜(why)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이 본령인 만큼 영국에서는 다윈의 영역을 과학적 탐구로 인정할 뿐 창조론과의 충돌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은 기독교가 거의 침투되지 않았고, 전통 사상도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자연주의에 가까워 창조론은 발 디딜 틈이 별로 없다. 따라서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과 관련해 논쟁도 거의 없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지만 창조론은 신화로 치부되고 진화론만을 유일한 과학적 세계관으로 교육하고 있다.

한편 더타임스 인터넷판은 11일 교황청이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이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황청 문화평의회를 이끌고 있는 잔프랑코 라바시 대주교는 “교회가 진화론에 적대적이었던 점은 사실이지만 진화론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적은 없다”며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을 인간의 발전에 대한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언급하면서 다윈의 복권은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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