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신발 봉변’웃어넘긴 부시, 화낸 원자바오

  • 입력 2009년 2월 5일 02시 45분


이라크와 영국에서 각각 신발 투척 봉변을 당한 미국과 중국 지도자의 반응이 흥미롭다.

지난해 12월 14일 이라크에서 기자회견 도중 불과 4.5m 거리에서 이라크의 문타다르 알자이디(29) 기자가 던진 신발에 맞을 뻔했던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놀랍게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함께 연단에 선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사실을 의식하고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웃음 띤 얼굴로 먼저 말을 건넸다. 곧 회견장에 있던 청중에게 ‘별일 아니니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까지 보냈다.

그는 이어 1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신발 투척은) 좀 별나긴 했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흥미로운 방법 중 하나”라며 “이라크 사법당국이 과잉대응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2일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강연 도중 15m 정도 떨어진 청중석에 앉아 있던 27세의 박사과정 재학생에게 신발 공격을 받은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는 굳은 얼굴로 “이 같은 비열한 행위로는 중영(中英) 양국 인민의 우의를 막을 수 없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중국 외교부는 다음 날 “영국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영국 정부가 깊이 사과하며 법에 따른 처벌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국인은 현재 신발 테러범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원 총리가 봉변을 겪을 당시 중국 국기로 화면을 대신하며 일부러 보도를 회피했던 CCTV는 3일 밤 뒤늦게 이를 자세히 보도하며 최근 경제위기로 불만이 높아진 13억 국민의 단합 계기로 삼고 있다.

이날 해프닝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은 이틀째 최대 조회수를 보이며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각국의 누리꾼은 이 동영상을 보며 중국이 애써 보도를 외면한 신발 투척자의 ‘독재자’ 발언의 의미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독재’의 의미를 중국의 티베트 탄압과 중국 내 열악한 인권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열풍을 불러일으킨 ‘제국의 미래’의 저자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중국 당(唐)나라를 포함해 로마제국 등 세계를 제패한 제국의 성공에는 ‘관용(寬容)’이 있었다고 갈파했다.

이런 점에서 신발 투척 봉변을 똑같이 당한 양국 지도자의 반응엔 차이가 적지 않아 보인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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