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노예들 피땀으로 지은 백악관에 흑인이 주인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4분


■ 美의사당 앞 취임식장 표정

‘변화와 책임’ 강조한 20여분 연설에 박수

美전역 1억4000만명 생중계 시청 ‘신기록’

군경 철통경호… 행사비용 1억7000만달러

버락 오바마 시대가 열린 20일 미국 워싱턴은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200여만 인파의 환성 속에 시내 곳곳은 성조기가 물결을 이뤘다.

○…20일 정오가 조금 지나 연단에 올라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존경하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사용했던 성경책에 손을 얹고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취임선서를 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선서를 마치자 의회의사당 주변에 몰려든 수많은 지지자는 성조기를 흔들며 뜨거운 환호로 새 대통령의 탄생을 축복했다.

200만 청중은 ‘변화와 책임’을 강조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이날 연설은 20분 동안 진행됐다.

○…미국 최초의 흑인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취임식에 반짝이는 노란색 드레스와 같은 색의 코트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노란색 바탕에 흰색 꽃무늬를 수놓아 밝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이 드레스는 쿠바 태생의 전위적인 미국 패션디자이너 이사벨 톨레도의 작품.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지적인 미셸 여사의 개성을 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판에 박히지 않은 취임식 복장을 선택한 미셸 여사는 중저가 브랜드 ‘제이크루’부터 패션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스의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션을 선보여 왔다.

○…백악관의 2인자로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던 딕 체니 부통령은 지팡이를 손에 든 채 휠체어를 타고 취임식장에 등장했다. 그는 19일 워싱턴 근교에 있는 새 집으로 박스에 담긴 짐을 옮기다가 등 쪽 근육을 다쳤으며 의사의 권유로 앞으로 며칠간 휠체어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백악관 측은 밝혔다.

○…취임 연설을 마치고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을 환송한 오바마 대통령은 의사당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오찬을 베풀었다. 오찬 메뉴는 링컨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해산물 스튜, 꿩과 오리 가슴살 등.

이어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백악관 인근까지 2.4km 축하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연도의 시민들 중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흑인이 많았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 1억4000만 명가량이 TV 생중계를 통해 취임식을 지켜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1981년 총 4200만 명을 끌어 모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의 최다 시청자 기록을 성큼 뛰어넘은 것.

○…영하 7도의 추위 속에 어둠이 짙은 20일 오전 4시부터 대통령 취임식장 주변 내셔널 몰엔 취임 축하 인파가 북적였다.

워싱턴 일대는 오전 4시부터 ‘도심 진입 전쟁’이 벌어졌다. 인근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사는 제임스 하(39) 씨는 “평소 5분 거리인 비엔나 전철역 주차장까지 1시간 반, 전철표를 사는 데 1시간, 전철이 평소 25분 거리인 시내까지 도착하는 데 1시간, 전철역을 빠져나오는 데 1시간이 걸렸다”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전 9시가 되자 125만 m²에 이르는 광대한 몰 광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들어섰고, 몰에 들어오지 못한 시민들은 인근 거리를 메웠다. 시민들은 연방 성조기를 흔들고, 대선 후보 시절 오바마 대통령의 구호였던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어)’을 외쳐댔다.

○…이날 취임식엔 하루 이상 걸려 기차나 전세버스를 타고 취임식에 참석한 흑인이 많았다. 일부 흑인은 워싱턴에 도착하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65년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유명한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출발한 버스 3대도 취임식 하루 전 워싱턴에 도착했다. 투표권 쟁취를 외치며 행진했던 흑인 600여 명을 주 경찰이 공격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은 1965년 흑인의 투표권 획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셀마에서 올라온 흑인들은 “흑인을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맞이하게 해준 신께 감사드린다”며 “44년 전 셀마에서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버지니아 출신 사업가 얼 스태퍼드 씨는 의회 의사당과 백악관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거리를 굽어보는 메리엇호텔의 객실 300여 실을 빌려 소외된 사람들에게 무료로 빌려줬다. 그는 35개 자선단체에 의뢰해 허리케인 이재민, 장애인, 빈곤층 가정의 아이 등 어려운 계층에게 취임식 행진을 호텔 창밖으로 볼 수 있는 혜택을 제공했다. 호텔 숙박료와 무도회 참석 의상, 미용, 식사 등의 비용으로 모두 160만 달러를 지불할 예정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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