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 대공황 이후 첫 ‘마이너스 수익률’

  • 입력 2008년 12월 12일 03시 06분


‘공포의 극치’… 보관료 내면서 돈 맡겨

투자손실 축소-환헤지 위해 안전자산에 몰려

기업에 갈 돈이 금고로… 한국, 비슷한 고민

미국 정부의 국채가 9일(현지 시간) 금리 0%에 팔리고, 한때 유통시장에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가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고 있다. 대공황 이후 볼 수 없었던 불길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달러짜리 채권을 101달러에 사는 것.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미 국채금리의 이 같은 기록적인 추락(국채 가격은 상승)은 신용경색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누가, 왜 이런 채권을 사나

이는 “이자는 필요 없으니 원금이라도 안전하게 보전하겠다”, 더 나아가 “‘보관료’를 줄 테니 내 돈을 지켜 달라”는 뜻이다. 원인은 한마디로 ‘두려움’ 때문이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아 투자자들은 이제 무조건 안전한 투자처만 찾으려 한다. 주식이나 회사채가 불안하면 예금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투자자들은 이제 은행도 믿지 않고 있다. 그러면 말 그대로 현금을 금고에 넣어 두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보관비용이나 위험이 따른다.

미 국채의 고객은 기관이 대부분이다. 보유 현금 액수가 작은 개인투자자들은 수익률이 나쁜 국채에 투자하기보다는 차라리 일정 한도는 예금자보호가 되는 은행에 넣어 두는 편이 더 낫다.

하지만 큰돈을 굴리는 기관들은 사정이 다르다. 주식 등 위험자산 투자로 큰 손실을 본 펀드매니저들은 투자자의 요구에 따라 안전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 해외 중앙은행들도 미국 국채를 선호한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비해 환헤지를 목적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것.

○유동성 공급 정책 무력화될 수도

겉만 보면 국채의 인기가 높아지면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 등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운용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작용의 강도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정부의 유동성 공급 정책이 무력화될 수 있다.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 중앙은행이 애써 공급한 돈을, 투자자들이 국채를 매입하면서 다시 정부 금고에 넣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투자자들이 국채만 선호하고 회사채나 주식 투자를 안 하면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된다. 이는 기업들의 파산과 실업을 불러 결국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가져온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은 “이는 한국 정부에 ‘유동성 공급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민간 부문에 흘러가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강력한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10일 뉴욕타임스는 경제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사람들이 돈에 대해 이자도 포기하고 심지어 손실마저 감수하는 것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며 “이는 좋은 징후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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