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또 터질라” 문닫힌 뭄바이 도심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1월 29일 03시 04분



성동기 특파원 ‘인도 테러현장’ 르포
식당-은행-기업 아예 셔터내려… 대학도 휴교조치
“돈보다 생명” 택시들 웃돈 줘도 번화가 운행 거부


《28일 오후 1시 인도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 앞. 테러범을 모두 소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인지 취재진과 시민들이 주변에서 호텔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두 번의 폭발과 총격으로 인한 굉음이 울렸다. 호텔 인근에서 전날의 참사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땅바닥에 몸을 바짝 붙였다. 호텔 인근에서 취재하던 내외신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인도의 경제 수도 뭄바이는 테러 발생 이틀이 지나서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5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동시다발 테러의 표적이 된 뭄바이 시민들의 얼굴은 사색이었다. 자동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이 야간에 뱃길을 이용해 상륙한 뒤 시내를 활보했다는 사실을 안 후엔 거리에 다니는 시민이 부쩍 줄었다.

테러가 집중된 뭄바이 금융중심가인 나리만 지구는 물론 다른 지역도 식당과 은행 기업들이 아예 셔터를 내린 채 인적이 드물었다. 27일에는 초중고교와 대학까지 휴교에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만이 언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를 걱정하듯 주변을 경계하며 이번 사태의 참상을 얘기할 뿐이었다.

▽참극 현장이 된 뭄바이 명소=기자가 28일 택시운전사에게 뭄바이 외곽에서 중심가로 들어가자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웃돈을 줘도 소용없었다. “타지마할 호텔에서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까지만 데려다 주겠다”는 한 운전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겨우 도착한 뭄바이 남부의 콜롬바 거리. 뭄바이의 상징 타지마할 호텔이 위치한 지역이다.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호텔을 잘 조망할 수 있는 콜롬바 거리는 관광객으로 넘치던 곳이었다.

테러 발생 사흘째인 이날 콜롬바 거리는 여전히 인파로 넘쳐났지만 상황은 사뭇 달랐다. 관광객이 즐비했던 자리는 군인과 경찰, 상황을 취재하는 보도진으로 꽉 찼다. 막바지 진압작전이 진행되면서 타지마할 호텔 인근 수백 m가 차량통행이 금지됐다.

콜롬바 거리 입구에 있는 레오폴드 카페는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소총 공격을 받아 외벽이 뜯겨나가고 철근이 앙상하게 삐져나온 모습 그대로다. 셔터가 굳게 내려진 정문 앞에는 산산조각 난 사기그릇이 군데군데 어질러져 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잔 페터손(34) 씨는 “늘 외국인이 북적거리던 곳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바다를 보던 곳이었는데 참극 현장으로 바뀐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후유증 오래 갈 것”=인도 정부는 “테러 잔당 소탕은 시간문제”라면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뭄바이는 여전히 공포감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전날 테러공격을 받았던 곳의 하나인 차트라파티 시바지 철도역 밖에서 이날 또다시 총성이 들렸다는 인도 TV 보도가 나오자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결국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특공대가 포위한 건물 안에 갇힌 테러범은 사살되거나 체포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테러 이전의 뭄바이’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쟁에 준하는 정신적 충격이 단 며칠 안에 말끔하게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상 침투에 성공한 테러범 중 일부는 범행에 동참하지 않고 수면 아래에 숨어서 2차 공격을 감행할 기회를 엿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당국의 분석이 현지 언론에 노출되면서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렌터카 회사를 운영하는 라제시 쿠마르 사장은 “이번만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되고 대범하게 범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상곤 KOTRA 뭄바이 관장은 “예전에는 미리 테러 기도가 당국에 포착되거나 타지마할 호텔처럼 외국인이 많이 묵는 특급 호텔은 안전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고 시민들의 불안 심리를 설명했다.

한 기업인은 “델리 등 인도 내 다른 도시에도 테러경계령이 최근 잇따라 내려지는 등 인도가 점점 불안한 지역이 되고 있다”며 “정부가 테러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인도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28일 밤늦도록 타지마할 호텔 주변에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테러범들과 군경들이 주고받는 총성과 폭발음이 밤하늘을 갈랐다.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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