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꽃’ 활짝 핀다

  • 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45분


■ ‘오바마 시대’ 美문화계, 인종 구분 옅어질 듯

저항-비판에 그치던 흑인문화

독자적 영역 구축 발판 마련

소수민족 문화도 한단계 도약

1967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에서 여주인공 조이(캐서린 호턴)는 여행 중 만난 남자친구 존(시드니 포이티어)을 가족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조이의 부모는 존을 보자 크게 놀란다. 백인인 자신들 앞에 등장한 존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존의 부모까지 저녁 모임에 가세해 이 커플의 결혼 허락을 놓고 왈가왈부 소동이 벌어진다. 양가 어른들은 결혼에 반대하다가 결국 ‘결혼은 인종을 놓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 사랑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당시 미국 사회에선 물론 오늘날까지도 파격적인 영화로 꼽히고 있다.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갖은 제도가 도입된 최근에 와서도 미국에서 ‘흑인 남-백인 여’ 커플이 등장하는 영화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를 비롯해 문학, 음악, 연극 등 미국 문화에선 여전히 인종을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부분의 분야에서 백인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흑인들은 주류사회에 대한 비판을 음악과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게 미국 문화의 현실이다. 미국의 흑인 랩가수 나스(Nas)가 올해 발표한 ‘히어로’라는 노래에도 “이런 인종차별 때문에 내 손발은 묶여 있고…”라며 인종 차별을 비판하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5일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탄생하면서 미국의 문화, 예술계에서 ‘백인 중심주의’와 인종에 따른 구분이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흑인이 미국의 최고 권력을 잡은 마당에 흑인들로서도 더는 차별을 거론하는 게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외형상 이미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미국에서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신흑인미학(The New Black Aesthetic)’을 쓴 작가 트레이 엘리스 씨는 “이제는 인종 이슈를 뒤로 제쳐두는 흑인세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흑인 문학 비평가 아미리 바라카 씨는 1960년대 중반 ‘흑인문화민족주의’라는 기치 아래 백인을 배제한 문화, 흑인 자생 문화 등 인종적 측면을 강조한 ‘흑인미학’을 주창한 바 있다. ‘흑인미학’에 따른 창작물에는 대부분 ‘저항’이라는 정신이 담겨 있었다.

신문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흑인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여성으로서, 흑인으로서 당하는 억압을 주요 소재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키 조반니, 마야 앤절루, 소니아 산체스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그는 “백인들의 우월주의가 약해지고 흑인들의 주체적 자기의식이 강해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흑백 융합, 흑백 공존 같은 주제가 문학을 포함한 창작 전반에 빈번하게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상률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에 따르면 이런 공존의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리처드 라이트와 같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통해 백인문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20세기 후반 들면서 백인사회에 대한저항을 완전히 내린 것은 아니지만 흑인 내부의 문화적 자성도 강조하는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이런 흐름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명수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백인 중심의 주류문화와 기타 비주류문화가 합리적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차이가 공존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면서 “특히 오바마 당선인이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혼종성을 띠기 때문에 흑인뿐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의 문화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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