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지도자는 인기영합보다 진실 말하는 용기 필요”

  • 입력 2008년 10월 31일 02시 58분


세계지도자포럼 참석차 내한한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가 30일 숙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경제위기 해법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훈구 기자
세계지도자포럼 참석차 내한한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가 30일 숙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경제위기 해법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훈구 기자
■ 존 메이저 前 영국총리 방한 인터뷰

“고통스러운 2, 3년 견디면 번영 되찾는다고 설명해야

공기업 민영화 진통 컸지만 결국 노동자가 이익 누려

앞세대에게 배우고 역사가 주는 교훈 늘 마음에 새겨”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는 30일 “위기를 맞은 지도자는 당장의 인기를 얻는 정책을 쓰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국민 앞에 솔직히 알린 뒤 고통스러운 2, 3년을 보내면 번영된 미래가 있다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국 60주년 기념 세계지도자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메이저 전 총리는 이날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전 지구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통상 경제위기라고 하면 유동성 부족이나 경기 침체 가운데 하나가 먼저 발생하고 나머지가 뒤따르게 된다. 이번 위기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한, 아주 드문 경우다. 당장 내놓을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유동성을 공급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히 금리를 낮추거나 재정 지출을 늘리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는 이 과정에서 국가를 위해 긴 안목에서 옳은 일을 할지, 아니면 단기적으로 인기를 얻는 일을 할지를 선택하게 된다. 꼭 필요하면서도 인기가 있는 일이 있을까. 당분간 전 지구적으로 인기 없는 지도자가 속출할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덧칠하지 않은 그대로의(unvarnished) 진실을 국민 앞에 고백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소상히 설명하라. 고통을 감내하며 처방에 따를 때 2, 3년 뒤엔 번영을 되찾을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이런 대통령의 설득 노력에 국민은 반응할 것이다.”

―금융위기로 인해 ‘신(新)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다루는 규칙은 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전체 경제시스템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한국이 지난 20년간 따랐던 방식과 50년 전에 선택한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이 한국의 경제, 교육, 의료 및 삶의 질을 더 좋게 만들었겠는가. 실수는 되풀이되면 안 되지만 전체 시스템을 바꿀 이유는 없다.”

―현직 총리 때인 1990년대에 영국철도(British Rail) 등 공기업 개혁을 추진했다. 야당과 노조의 반대를 어떻게 해결했나.

“역시 설득과 타협 외에는 해법이 없다. 공기업 민영화는 항상 논쟁을 불러온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존재다. 공공기업 종사자가 민간의 경쟁 영역에 들어선다는 건 힘든 일이다. 여야 정치권과 영국 사회에 토론을 제안했다. 나는 민영화 이후의 직장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영국 보수당이 선택한 방식은 노동자에게 기업의 주식(자사주)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새로운 시도였다. 민영화한 기업이 성공할수록 노동자가 이익을 보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지금 영국에는 수많은 주주가 존재한다. 혁명적인 방식이었다.”

―영국이 공기업 민영화를 본격화한 지 20년이 지났다. 영국인은 지금도 성공이었다고 자신하나.

“(국영기업에서 민영화한 영국항공의) 경영을 누가 더 잘하겠는가. 정치인에게 영향을 받는 공무원인가, 아니면 민간 항공 전문가인가. 민영화 이행 이후에 집권한 어느 지도자도 다시 국유화하지 못했다. 성공 여부에 대한 답은 충분한 것 아닌가(웃음).”

―1990년 말 총리 취임 직후 영국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당내 요구가 있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나는 1차 걸프전 시작 3주 전에 취임했다. 그 전쟁에서 영미 연합군이 이라크에 승리한 직후 의회를 해산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반대했다. 전쟁을 치른 분위기에서 유권자에게 표 행사를 요구하면 의원 선출 때 정확한 선택을 못할 수도(false selection) 있다. 또 그렇게 탄생한 의회가 국민의 위임을 충분히 받았다고 말할 수 있나. 내가 총리로서 어떤 정치를 하는지 보여준 다음에 선택받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난 1년 여 뒤에 선거를 치렀다.”

―참모들은 반대했을 것 같다.

“참모의 조언 없이 나 홀로 내린 결정이었다. 신사(젠틀맨)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은 미디어가 단편적인 모습만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담고 있는 원칙은 무엇인가.

“정치를 시작한 뒤 세 가지 원칙을 잊지 않았다. 우선 경험을 가진 앞 세대에게 배우려 했다. 또 역사가 주는 교훈을 늘 적용하려고 했다. 아울러 올바른 정책을 위한 구체적 사안(detail)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정치는 역시 사람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념이나 정책을 뛰어넘어 내가 대변하는 유권자의 삶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가 아닌 보수 선택한 이유는?

“노동당은 ‘가만 있으면 국가가 다 해준다’ 메시지

나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 시장의 기능에 더 매료”

―어린 시절 당신은 런던 외곽의 서민지역에서 자랐다. 또 생계를 돕느라 고교를 중퇴했다. 그런데도 보수당을 선택한 이유는….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었다. 방이 2개뿐인 집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는 거의 시력을 잃었고, 몸져누웠다. 일찍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나는 15세 때 고교를 중퇴했고 (10대 후반부터) 정치에 관여했다. 당시 내가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노동당은 효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노동당 얘기는 ‘지금 그대로 가만히 있어라. 언젠가 노동당이 너희를 어려움에서 꺼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 같았다. 보수당은 달랐다. ‘열심히 일하라. 스스로 가난의 굴레에서 빠져나와라. 보수당은 그것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내 선택은 보수당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이데올로기에 빠진 정치인이 아니다. 보수당이 늘 옳고, 노동당은 늘 틀린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인간의 선택과 의지, 시장의 기능에 더 매료됐을 뿐이다.”

―하지만 15세 때 고교를 중퇴하고도 그렇게 빨리 성공할 수 있는가. 비록 환경은 안 좋았지만 공부는 잘한 수재였을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공부하기가 싫었다. 엄격한 학교 규칙이 싫었고, 학생이라는 사실 자체도 싫었다. 역사와 수학 과목은 좋아했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당신의 초고속 성공을 가능하게 했나.

“고교 중퇴 후 공사판에서, 또 지방정부와 은행에서 일했다. 오전 4시에 일어나 3시간 공부했다. 퇴근한 뒤에는 보수당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학교는 떠났지만 뭔가를 꾸준히 배우려고 했다. 학교 성적은 뛰어난데도 졸업 후 업적과 기여가 없는 사람이 많다. 호기심을 갖고 배우려는 노력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10대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게 이례적인데….

“13세 때 영국 하원을 방문해 의원들이 예산을 심사하는 장면을 봤다. 의사당은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건물로 어린 내 눈에 너무 아름다웠다. 진지한 토론 분위기는 나를 압도했다. 그때 ‘그래 이거다’ 싶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여기서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중고교생은 시험, 경쟁, 학원수업에 매달려 있다. 총리처럼 학교 다니는 것이 버거운 학생이 적지 않다.

“내가 학교를 싫어한 것은 큰 실수였다.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지금 세상은 아주 경쟁적이고 대단히, 대단히(much라는 말을 세 차례 반복) 거친 곳이다. 학창시절을 나처럼 게으르게 보내선 안 된다. 배움은 학교를 떠난 뒤에도 계속돼야 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 학생에게 미래의 꿈을 거론한다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강연할 때 젊은 세대에게 말한다. ‘지금의 정치가 싫은가. 그렇다면 그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바꿔라. 잘못된 정치를 그냥 놔둔 채 불평만 할 건가’라고. 비극적인 일은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정치는 ‘최고의 인재(the best and the brightest)’가 늘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지만 정치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꿈을 갖기 바란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차분한 설득-신중한 언행 ‘정직한 존’ 별명

고교중퇴 학력 英정치권 신선한 충격 던져

■ 메이저 前총리 누구

영국 보수당의 부활을 이끈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뒤를 이어 1990년 47세에 총리에 올랐다. 한때 곡예사로도 일했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15세 때 고교를 중퇴했다. 이런 학력 때문에 옥스브리지(옥스퍼드 및 케임브리지대) 출신이 정치를 좌우하던 영국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10대 후반부터 노동자,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거리의 정치연설을 통해 지방 정치를 시작했다.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을 거쳐 25세 때 지방의원에 당선되면서 직업 정치인이 됐다. 31세까지 2차례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36세 때 하원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됐다. TV 등장으로 얼굴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노동자 구역에서 자주 아침 식사를 하는 등 서민적인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차분한 설득과 신중한 언행으로 영국 언론에서 ‘정직한 존(Honest John)’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연설 및 인터뷰에서 숫자와 통계, 역사적 사실을 자주 인용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11년간의 하원의원 생활 동안 재무장관 외교장관을 거치면서 미래의 총리로 성장해 갔다.

총리 시절 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제3의 길’을 앞세운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1997년 정권을 넘겼다. 현재 크레디트스위스 은행의 고문을 맡고 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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