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시민들 “금융위기에 정치쇼” 시큰둥

  • 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총리는 유도DVD 들고 고향가고… 대통령은 집무 동영상 올리고…

러시아에서 상왕(上王)으로 통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7일 56회 생일을 맞아 유도 시범 동작을 담은 DVD를 들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다.

푸틴 총리는 2000년부터 올해 5월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매년 생일날을 모스크바 외곽 별장에서 측근과 보냈다. 생일에 초대받는 사람들은 실세 중의 실세라는 말을 들어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 이고리 세친 부총리, 빅토르 줍코프 전 총리 등도 생일 모임 멤버였다.

푸틴이 이런 모임을 마다하고 올해는 깜짝 행보에 나선 것. DVD의 제목은 ‘푸틴과 함께 유도를 배우자’였다. 유도복을 입은 푸틴 총리는 유도의 기원을 설명하고 기본동작을 시연한 장면을 담았다. 올해 3월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찍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열세 살 때부터 유도를 익힌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티놉스키 궁전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경기에서 타협과 양보도 할 수 있다. 단, 승리를 위해서만 허용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일간 모스크바타임스는 “유도는 푸틴이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라고 전했다.

러시아 언론은 실세 총리가 연일 곤두박질치는 러시아 주가와 금융시장의 위기에서 러시아를 구해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러시아 대표주가지수인 RTS는 그의 생일날 심리적 저지선인 1,000 아래로 떨어져 858.16으로 마감했다. 이날 증시는 9월에 이어 또 한 차례 거래가 정지됐을 정도로 썰렁했다.

러시아 양두(兩頭)정치의 또 다른 축인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크렘린에서 집무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꾸며 크렘린 게시판에 올렸다.

시민들은 실세 총리와 대통령의 깜짝 행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이고리 코렐로프 씨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지도자들의 정치쇼는 불신만 낳을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