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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9월 2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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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신뢰 회복해야 성공
공통점 전담기관 세워 공적자금으로 부실 제거
다른점 재정적자 크게 늘어 ‘실탄’ 확보엔 한계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금융위기 극복의 로드맵으로 삼아야 한다.’(미국 월스트리저널)
미국의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올해 7월 미국 언론은 1990년대 말 아시아 경제를 강타한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한국과 태국 등 아시아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기관의 부실을 털어내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 1990년대 초반 스웨덴 등의 금융위기 극복을 통해 이미 검증된 아시아식 위기 극복 모델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미국의 선택은 한국과 스웨덴식 모델
70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계획은 1990년대 초반 스웨덴의 금융위기,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한 해법과 비슷하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은행돈을 빌려 무리한 차입 경영을 펼치던 한보 기아 등 대기업이 무너지면서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옮아가 금융위기에 이어 외환위기로 번졌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부동산 가격 하락과 미국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실패에서 비롯됐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거품이 빠지자 부동산을 토대로 한 각종 구조화채권이나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금융기관의 연쇄 부실로 이어진 것. 자산가격 거품으로 촉발된 1990년대 초 스웨덴의 금융위기와 비슷하다.
○ 부실 규모와 파생상품 손실 등이 과거와 차이점
미 정부도 모기지 관련 부실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1989년 미국 저축대부조합 사태 당시 부실채권을 처리했던 정리신탁공사(RTC)와 같은 기관을 설립할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당시 5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동원해 부실채권을 매입하고 예금자의 예금을 대신 지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복잡하고 규모가 커 과거 경험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월스트리저널에 따르면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 손실 규모는 약 4040억 달러, 1989년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사태 당시 2730억 달러인 데 비해 최근 미국 금융위기 손실은 945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모두 168조5000억 원으로 1997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5164억 달러의 28.7%에 이르는 금액이다. 반면 미국 정부가 밝힌 공적자금 7000억 달러는 지난해 미국의 GDP(13조8413억 달러)의 5% 정도에 불과하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국제경제실 연구원은 “1980년대 RTC는 직접 모기지 부실 채권을 인수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부실채권 중 파생상품이 많아 과거보다 상품구조가 훨씬 복잡하고 규모를 추산하기도 어렵다”며 “어떤 채권을 어떻게 매입해야 할지도 앞으로 논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충분한 공적자금 투입과 회수가 성공의 열쇠
한국과 스웨덴은 경제위기 초기에 공적자금을 충분히 투입했고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 성공한 위기 극복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스웨덴이 부실은행 구제를 위해 650억 크로나(약 11조500억 원)를 들였지만 국유화한 은행을 매각하거나 배당 수익으로 공적자금을 회수했다”며 “스웨덴 정부가 납세자에게 부담을 거의 지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도 168조5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들여 금융기관과 기업 구조조정에 나섰고 올해 6월 말 현재 91조7000억 원(회수율 54.4%)을 회수했다. 스웨덴은 공적자금 회수율이 100%를 넘었다.
김광남 예금보험공사 리스크감시1부 팀장은 “초기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공적자금 확보 여부에 따라 위기 극복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재정적자가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다 달러 가치 하락도 우려되는 상황이어서 공격적인 공적자금 투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