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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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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시위-파업 늘고 해외 여행객 줄어
신구 파워엘리트 마찰로 불안 징후 감지
든든했던 대통령이 자리를 바꾸는 것이 허전한 것일까, 오고 가는 세력의 마찰이 걱정인 것일까.
“대통령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들의 5월 해외여행 수요가 예상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나자 칼루스카야 지하철 역 주변에서 해외 단체 관광객을 모집하는 여행사 직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이 열리는 5월 7일 이후 여행을 취소하는 고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대통령 교체를 앞둔 뒤숭숭한 분위기는 레닌스키 거리에 새로 들어선 화장품 체인점 ‘아르바트 프레스티지’에서도 느껴졌다. 러시아 전역에 점포를 둔 이 가게 주인 블라디미르 네크라소프 씨는 지난해 12월 탈세혐의로 구속됐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미 지난주부터 이 체인점들이 잇달아 문을 닫기 시작했다.
네크라소프 씨의 구속은 특히 러시아 신구 파워엘리트의 이권과 권력 다툼이 수면 위로 올라온 사건으로 해석돼 파장이 크다. 그가 체포될 당시 세묜 모길레비치라는 석유 중개상도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부터 기득권을 유지해 온 이른바 ‘크렘린 구파’를 등에 업고 석유와 가스를 판매하다 화장품 판매에도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게 앞을 지나던 시민들은 “모스크바에서는 가게들이 아직 유지되는 것을 보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파와 새 대통령을 옹호하는 신파의 다툼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평화적 대통령 교체나 민주주의 제도가 아직 생소한 러시아 시민들은 “파워엘리트 간 충돌로 1990년대 초반과 같은 정변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 정치평론가들은 채널1, ‘러시아’, NTV 등 지상파 TV 방송에서도 심상치 않은 낌새를 읽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8년 동안 러시아 방송 뉴스의 등장 순위 1위였다. 그러나 새 대통령 취임식이 다가오면서 이 같은 흐름이 바뀌고 있다. 28일 채널1은 메드베데프 당선자의 얼굴을 더 많이 비췄다. 반면 ‘러시아’ 채널은 푸틴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더 많이 내보냈다.
푸틴 대통령 집권 말기에 터져 나오고 있는 각종 시위와 파업도 예사롭지 않다.
25일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자동차 운전자들이 “산유국인 러시아의 기름값이 일본보다 비싸다”며 길거리 경적 시위를 벌였다. 28일 모스크바에선 철도 노동자들이 임금 70%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평론가는 “크렘린 내부 권력 배분이 정리되지 않은 데다 물가 인상과 저임금을 호소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일시에 터져 나와 새 대통령의 입지가 장기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