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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8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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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프랑스 파리에는 한겨울에도 내리지 않던 눈이 내렸다.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중국 베이징 올림픽 성화는 이날 세 차례나 꺼지는 우여곡절 속에 당초 예정된 봉송 코스를 절반가량 단축하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파리를 힘겹게 빠져나갔다.
“성화는 어디 있는 거야?”
구경 나온 파리 시민들에게 성화는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65대의 경찰 오토바이, 100명의 소방관,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100명의 경찰관, 폭동 진압 경찰을 실은 50대의 차량 등 3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성화 주자를 겹겹이 에워쌌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2000여 명의 시위대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피해 성화를 끄고 보조 성화를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에 실었다 다시 꺼내 봉송을 재개하는 것을 세 번 반복했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소화기를 든 시위대가 나타났을 땐 곧바로 성화를 버스로 옮겨 싣기도 했다. 결국 에펠탑에서 개선문 콩코르드광장 의회 앞까지 힘겨운 성화 봉송을 이어 가던 경찰은 이곳에서 성화 봉송을 포기했다.
성화는 개최지에 도착할 때까지 꺼져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장프랑수아 라무르 전 프랑스 체육장관은 AP통신에 “(봉송에 쓰인) 성화는 꺼졌지만 올림픽 성화의 불꽃은 성화 전용기 안에 있는 램프에서 계속 타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는 런던에 이어 유럽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성화 봉송 도시. 중국 정부의 티베트 무력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유럽에서 이대로 성화를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듯 성화를 지키는 경찰과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온 티베트인들까지 가세했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 의원 1명을 포함해 최소한 5명이 체포됐다.
중국 유학생 중심의 친(親)중국 관제 시위도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서 친중국과 친티베트 시위대는 언쟁을 벌였고 격렬한 몸싸움까지 했다.
시위는 전날 시작된 것과 다름없었다. 파리 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린 6일, 3만5000명의 참가자는 ‘인권을 짓밟지 말고 달리자’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파리 시내를 달렸다. 이날 성화가 봉송된 영국 런던에서는 성화가 시위대에 거의 탈취될 뻔했다.
프랑스의 정치인들도 이런 분위기를 거들었다. 사회당 소속인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은 성화가 지나가는 길목인 시청에 ‘파리는 세계 어디서나 인권을 옹호한다’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걸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올림픽 개막식 불참을 배제하지 않았다.
성화는 파리를 끝으로 유럽을 떠났다. 그러나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1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성화 봉송도 난관이 예상된다. 17일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고 티베트인 8만7000명이 거주하는 인도 뉴델리에서 성화 봉송이 이뤄진다.
성화 봉송이 반(反)중국 시위에 직면한 것에 대해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7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IOC 회의에서 “티베트에서 일어난 일과 국제적 상황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일부 정치인은 (개막식) 보이콧 구상을 악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콧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엔은 이달 28일 평양을 통과할 올림픽 성화 릴레이에 직원들을 주자로 참여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과 구호품이 전달될 수 있도록 북한 정부를 압박해 온 유엔 산하 원조기관들이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북한의 선전 전략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내부 논란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