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대방송 저녁뉴스는 죽었다”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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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저녁 뉴스는 죽었습니다. …뉴스를 채우기 위해 뉴욕타임스를 사려고 줄을 서고 있죠.”

케이블 뉴스채널 CNN의 진행자인 글렌 벡은 올해 10월 방송 도중 이같이 ABC CBS NBC 등 미국 3대 지상파 TV의 뉴스를 질타했다. 이들 방송이 새로운 뉴스를 발굴하기보다 권위 있는 신문이 선도하는 쟁점을 가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는 사실을 비판한 것.

미국에서 지상파 TV 뉴스가 위기를 맞고 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뉴스가 고전한다는 것은 이미 구문(舊聞)이지만 1980년 5200만 명으로 추산되던 3대 지상파 메인뉴스의 시청자는 최근 2500만 명으로 급감했다.

시청자 연령의 중간치가 만 60세에 이를 만큼 젊은 층의 뉴스 외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시청률뿐 아니라 ‘신뢰도’의 위기도 잇따르고 있다.

3일 밤 미국 TV 시청자들은 NBC방송의 심야 코미디 프로그램 ‘토요일 밤 라이브’의 진행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청자가 950만 명으로 집계되는 NBC 저녁 메인뉴스의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였기 때문이다. 평소 무게감 있던 뉴스 진행자의 면모를 벗어 던진 그는 이날 ‘망가지는’ 코미디도 마다하지 않았다. 방송작가 조합이 파업한 것도 그가 나선 표면적인 이유지만 “방송사마다 1년에 100만 명씩 시청자가 줄어든다”는 저녁뉴스의 시청률 저하를 만회해 보려는 도박으로 풀이됐다. 우리나라의 9시 뉴스 진행자가 심야 개그 프로의 사회를 본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담당 하워드 커츠 기자는 10월 출간한 저서 ‘리얼리티 쇼’에서 지상파 뉴스 시청자가 감소하는 이유를 ‘뉴미디어의 약진과 진보-보수그룹의 반목, 지상파 뉴스에 대한 케이블 뉴스의 집요한 공격’으로 분석했다.

그의 지적처럼 최근 미국 언론의 상호공격을 주도하는 쪽은 케이블 뉴스 채널이다. 공화당 성향인 ‘폭스뉴스’의 경우 빌 오라일리 같은 간판 진행자는 “NBC나 CBS 뉴스에서 보수적인 언론인을 1명이라도 대 보라”고 말한다. 폭스뉴스는 지상파 TV뿐 아니라 ‘반(反)부시’ 색채가 강한 뉴욕타임스와 CNN도 “조지 W 부시 대통령만 비판하는 부패한 언론”이라고 매도해 왔다.

최근 들어 짙어지는 ‘권위의 해체’도 지상파 뉴스가 처한 위기의 일단을 보여 준다.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행한 이라크 병력 증파를 두고 ABC 저녁 뉴스는 “단기적인 성과를 냈다”고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다음 날 조간신문의 논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보도는 대신 반전운동단체들로부터 “부시의 앵무새로 전락한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시청자 감소에다 30년 권위마저 붕괴될 위기에 처하면서 3대 방송사의 저녁 뉴스는 이래저래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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