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대통령 “쿠르드, 싸우려면 떠나라”

  • 입력 2007년 10월 22일 2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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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터키 국경지대에서 쿠르드족과 터키군이 유혈 충돌했다.

이번 충돌은 터키 의회가 쿠르드족 무장세력 진압을 위해 이라크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승인한 지 나흘 만에 일어난 것. 쿠르드족의 습격으로 시작된 이번 교전에 터키 정부가 강력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대규모 확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쿠르드노동자당(PKK) 소속 게릴라 200여 명은 21일 새벽 국경에서 불과 5km 떨어진 하카리 주 다글리차 마을 근처의 터키군 캠프를 공격했다. 이날 습격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소 12명의 터키군이 사망하고 16명이 다쳤다.

곧바로 반격에 나선 터키군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기지 60여 곳을 집중 포격해 쿠르드족 32명이 사망했다.

이 충돌사태와 별도로 국경 인근 도로에서는 PKK가 교량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 17명이 부상했다.

압둘라 굴 터키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저녁 정부 및 군 고위 관리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고 22일에도 각료회의를 열어 군사 작전 개시 시기 등을 논의했다..

굴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라크의 영토와 주권을 존중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며 "터키 정부는 PKK를 응징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굴 대통령은 또 "이라크 영토의 주권을 존중하지만 터키는 누군가 테러를 지원하고 부추기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나타냈다.

터키 군이 이라크와의 국경 지대에 탱크와 공격용 헬기를 앞세운 10만 병력을 집결시킴에 따라 확전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에 따라 터키가 즉각적인 보복 공격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22일 "어제 베스디 고놀 터키 국방장관과 만나 '쿠르드 무장세력의 도발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대적인 월경 작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그는 "고놀 장관이 일방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주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긴급 안보회의 참석차 터키를 방문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에르도안 총리를 만나 "며칠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에드도안 총리는 라이스 장관의 요청 사실을 인정하며 "미국에 PKK의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즉각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고놀 터키 국방장관은 "우리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고 여론은 악화일로에 있다"면서도 "월경 작전을 계획하고 있지만 작전이 즉각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터키 야당 지도자들이 즉각적인 월경 작전을 주장하며 집권 여당을 압박하는 가운데 터키 주요 일간지들도 정부가 서둘러 군사작전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쿠르드족에 대한 무력대응 여론이 높아지면서 긴장감도 고조되는 모습이다. 이라크 의회는 21일 터키의 쿠르드족 자치 지역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이라크 내 쿠르드족 지도자들도 "월경 군사작전 시 보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쿠르드족 출신인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쿠르드족 게릴라 세력에게 "싸움을 중단하지 않으려면 이라크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이는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쿠르드족 무장세력 관련 발언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으로, 이들과 거리를 두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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