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인터뷰 제안 고맙지만 기자까지 지정하는건 월권”

  • 입력 2007년 10월 10일 03시 02분


‘현직 미국 대통령과 갖는 단독 인터뷰.’ 어떤 매체든 꿈꾸는 기회다.

그러나 9월 말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는 이 같은 기회를 스스로 박찼다. NPR는 백악관이 인터뷰할 기자를 직접 지명해 제안한 것이 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당시 백악관은 NPR에 “공립학교의 흑백분리를 위헌으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 50주년을 맞아 미국 인종문제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단, 후안 윌리엄스(53)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파나마 출신으로 흑인인 이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에서 23년간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칼럼니스트와 백악관 출입기자를 지낸 워싱턴의 명사다. 하지만 NPR 외에 친부시 성향이 강한 폭스뉴스의 고정 분석가로도 활동할 정도로 조지 W 부시 정권과 성향이 맞아떨어진다.

8일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NPR의 데이너 페리노 대변인은 “윌리엄스 기자는 과거 인터뷰 기회를 통해 백악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며 그를 콕 찍어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NPR는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 7년간 단독 인터뷰를 신청했으나, 올 1월 딱 한 번만 허용됐다. 당시 인터뷰 진행자가 윌리엄스 기자였다.

부시 대통령은 흑인 빈민이 많이 거주하는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피해를 봤을 때 늑장 대처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따라서 흑인의 자유 신장에 관해선 흑인인 윌리엄스 기자가 최적의 인터뷰 진행자라고 부시 대통령은 판단한 것.

그러나 엘린 와이스 NPR 부사장은 “인터뷰 제안은 감사하지만 기자 선정은 매체에 맡겨 달라. 가급적 간판 앵커에게 인터뷰를 맡기고 싶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백악관이 ‘윌리엄스 기자의 인터뷰 진행’이라는 조건을 철회하지 않자 NPR는 “그렇다면 인터뷰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백악관은 끝내 윌리엄스 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당신이 겸직하는 폭스TV가 방송시간을 내준다면 인터뷰를 폭스TV에 내보내자”고 윌리엄스 기자에게 제안했다.

윌리엄스 기자도 NPR 경영진에 “왜 기회를 포기하느냐”고 항의했고, 폭스TV도 “윌리엄스처럼 검증된 기자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는 NPR의 오만이 놀랍다”는 성명을 냈다.

부시 대통령 인터뷰는 결국 9월 말 폭스TV를 통해 방송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윌리엄스 기자의 질문은 대통령이 불편해하지만 시청자가 꼭 알아야 할 핵심이라기보다 대통령이 질문받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많이 띄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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