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푸틴…총선 출마한뒤 총리 취임

  • 입력 2007년 10월 3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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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내년 5월 임기를 마치고 총리 직을 맡을 수 있다고 언급해 퍼즐게임 같은 그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55세의 푸틴 대통령이 내년에도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 올 12월 총선에서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 비례대표 1번으로 등록하고 내년에 총리를 맡겠다는 구상을 예측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미지의 인물 빅토르 줍코프를 총리에 앉힌 데 이어 ‘임기 이후’ 자리에 대한 파격적인 구상을 내놓자 러시아 정치권은 크렘린판(版) 정계개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언급은 사전에 짜인 각본에 따라 나왔다는 인상을 줬다. 1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한 대학 총장이 “총선에서 1번 후보를 맡고 내년에 총리가 돼 달라”고 요청하자 푸틴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케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보리스 그리즐로프 통합러시아당 당수가 “대통령 연설을 당 강령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했으며 당원들은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이런 계획이 크렘린 내부의 ‘푸틴 서클’에서 세워졌음은 분명해 보인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보안국장과 이고리 세친 대통령 행정부실장 등 극소수의 세도가로 둘러싸인 이 서클은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 계획을 총괄 지휘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나온 푸틴 대통령의 재집권 시나리오는 갖가지 변수와 경우의 수를 고려한 것으로 푸틴 대통령의 두마 의원 후보 등록과 총리 취임도 이 시나리오 중의 하나라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의 비례대표 입후보는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푸틴 대통령이 두마 의원에 등록해 통합러시아당의 승리를 가져다 준 뒤 대통령 직이나 두마의원 직 하나를 선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셈이다. 다만 푸틴이 대통령 직을 일단 사퇴했다가 내년 대선에 재출마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푸틴 대통령이 내년 5월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총리 자리로 이동하는 시나리오가 실행될 경우 후계자 지명이 복잡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 크렘린은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나 드미트리 메드베제프 제1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후계 구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내년에 총리 직에 오를 경우 이들보다 영향력이 미약하고 말을 잘 듣는 ‘예스맨’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푸틴 대통령이 내년에 줍코프 총리와 자리를 맞바꿀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힘을 얻고 있다.

뱌체슬라프 니코노프 정치연구소 회장은 “권력은 한번 놓으면 다시 잡기 어렵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행정부 안에서 실권을 쥔 상태에서 2014년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야당인 야블로코당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당수는 푸틴의 총선 출마와 총리 취임 구상에 대해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라고 비난하고 “이는 러시아를 일당 시스템으로 끌고 가려는 위험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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