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아프간 인질석방에 다양한 막후 지원

  • 입력 2007년 9월 2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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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됐던 한국인 인질들이 무사히 풀려나 귀국하는 데는 군 당국의 역할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2일 "카불과 가즈니에서 활동한 군사협조단 등을 통해 수집된 인질 및 탈레반 세력의 동향 첩보 등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는데 기초자료가 됐다"면서 "특히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한 노력은 인질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이끄는 국제안보지원군(ISAF) 사령부와 미국의 연합합동군사령부(CJTF-82), 주한미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수집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청와대, 외교통상부, 국정원 등에 전달하며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지원해왔다.

앞서 김장수 국방장관은 7월 20일 외교통상부가 한국인 23명의 피랍 사실을 공식 발표하자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24시간 상황대책반 가동을 지시하면서 아프간 현지 동맹군사령관들과 거의 매일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군은 7월 21일 아프간에 파병된 다산부대 소속 영관장교 4명으로 구성된 '가즈니·카불 군연락단'을 가즈니 시로 급파했다.

이어 7월 23일에는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MNF-I)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인범(49·육사37기) 준장과 영관장교 4명으로 이뤄진 '군사협조단'을 카불로 파견해 정부의 인질 석방 노력을 적극 지원하도록 조치했다.

○…"인질 억류 위치·이동로 실시간 파악"

카불의 ISAF사령부에 파견된 군사협조단은 ISAF와 미국의 CJTF-82가 운영하고 있는 영상·신호 정보수집 자산을 인질 및 탈레반 동향을 파악하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설득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독일제 토네이도 및 미국의 프레데터 무인정찰기와 위성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첩보기, 군사위성 등을 운용하고 있는 ISAF와 CJTF-82의 관계자들을 움직인 것이다. 이들 정보 자산은 탈레반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무인정찰기와 군사위성 등을 통해 인질들이 3~4명 그룹 단위로 여러 지역에 분산 억류돼 있으며 탈레반 측이 구출작전에 대비해 이들을 자주 이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위성전화 감청 등으로 알 수 있었다.

ISAF와 CJTF-82는 이들 첨단 정비뿐만 아니라 휴민트(HUMINT·인적정보망)를 가동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 자체가 신빙성이 높았다.

이 때문에 ISAF와 CJTF-82 관계자들은 사전에 파악된 인질 이동로를 지키고 있다가 구출작전을 감행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고 초기단계에서는 군사작전을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 억류지역서 불필요한 군사행동 억제"

군사협조단과 국방부 및 합참은 여러 곳에 분산 억류돼 있는 인질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인질 억류지역에서 동맹군의 불필요한 군사행동을 억제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군사협조단은 ISAF와 '일일 군사협조회의' 체제를 구축했다.

이 회의를 통해 매일 피랍 관련 정보를 교류하고 정부의 지침을 즉각 이행할 수 있도록 ISAF 관계자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

군의 한 소식통은 "일일 군사협조회의를 통해 우리 정부의 인질석방 활동이 아프간군과 ISAF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점을 주지시키고 협조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특히 군사협조단은 인질들의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ISAF와 아프간군의 군사작전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한편 ISAF의 딘 멕닐 사령관(미 육군대장)에게 억류지역에서의 불필요한 병력이동 및 군사행동을 자제해 주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관계자는 "ISAF와 아프간군은 대테러전을 주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을 여러 차례 실행하려고 했었다"면서 "우리 군은 전방위 군사외교 노력을 통해 이를 말리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카불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군사협조단 관계자들이 무모하리 만큼 적극성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안다"면서 "특히 미군 측은 군사협조단 관계자들에게 차량과 경호요원까지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카불→주한미군→국방부 화상회의시스템 가동"

국방부에서 상황대책반을 이끌었던 김근태 합참 작전본부장(중장)은 사태 초기 위성전화를 통해 카불과 연락을 취하며 지침을 하달했다.

그러나 7월31일 탈레반 측이 두 번째로 심성민 씨를 살해하자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카불 군사협조단에 화상시스템을 가동하도록 긴급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태가 악화한 만큼 아프간군과 ISAF가 군사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등 긴박한 현지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감시체계 구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이끄는 ISAF와 우리 국방부 및 합참을 화상으로 연결하는 라인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합참은 주한미군 측에 지원을 요청했다. 주한미군은 세계 어느 곳이든 미군이 활동하는 지역을 모두 연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한미군 측의 도움으로 ISAF→CJTF-82→주한미군→국방부·합참을 연결하는 화상시스템이 개통됐다.

군 관계자는 "주한미군측이 피랍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등 인질석방 노력을 적극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동의·다산부대, CJTF-82사령부와 협조체제"

한국인 인질석방 과정에서 아프간에 파병된 동의·다산부대의 역할도 막중했다는 평가다.

바그람 기지에 있는 동의·다산부대는 한국인 피랍 직후 자체 상황실을 운영하고 CJTF-82사령부에 연락장교 4명을 파견, 미군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

정장수 다산부대장은 한국군을 대표해 수시로 가즈니 시를 방문해 '가즈니·카불연락단'의 활동을 독려하는 한편 CJTF-82 사령관 등 관계자들과 접촉,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

특히 가즈니에 있는 미군 지역재건팀(PRT)에 의료진 7~8명을 상주시키고 인질들이 필요로 하는 의약품과 구호물자 2000여 점을 가즈니로 공수하기도 했다.

동의·다산부대는 고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 시신을 운구해 바그람 기지 내 미군 제455병원에 안치하고 먼저 석방된 김경자, 김지나 씨를 진료하기도 했다.

동의부대는 의료팀을 가즈니로 파견한 뒤 의료인력이 부족했지만 아프간 주민들의 진료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가즈니·카불 연락단'은 가즈니 지역 원로와 가즈니 주 관계자, 아프간 정보책임자 등을 접촉하면서 동의·다산부대의 이런 활동을 홍보하는 한편 피랍자들도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임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연락단 소속의 한 영관장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사귄 아프간 지인들을 동원해 여러 명의 부족 원로들과 문하영 외교부 본부대사 간 식사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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