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e메일 통째로 보자는 건 선진국선 생각 못해”

  • 입력 2007년 7월 3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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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 시민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본사 사옥 신문 게시판 앞에서 검찰의 동아일보 사옥 압수수색 시도와 관련한 기사를 읽고 있다. 김미옥 기자
29일 한 시민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본사 사옥 신문 게시판 앞에서 검찰의 동아일보 사옥 압수수색 시도와 관련한 기사를 읽고 있다. 김미옥 기자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서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일체의 법을 만들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언론인에게 취재원 공개를 요구하는 수사 당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른바 취재원비공개 보호법(방패법·Shield Law)은 주(州)법에 머물 뿐 아직까지는 연방법으로 제정돼 있지 않다. 이런 가운데 27일 본보와 인터뷰한 미국의 언론 전문가 3명은 ‘언론 자유의 수호’를 강조했다.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검찰이 불특정 다수의 e메일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검찰에 맞서 싸울 것을 동아일보에 권한다”는 견해를 한목소리로 밝혔다. 인터뷰에는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브라이스 넬슨 남캘리포니아대 애넌버그 언론대학원 교수, 퓰리처상을 시상하는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의 마이크 호이트 교수, 기자와 언론법 변호사를 거친 루시 댈글리시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RCFP) 사무국장이 응했다.》▽“맞서 싸우라”=3명의 언론 전문가는 모두 “정부의 e메일 요구에 저항하라(resist)”고 강한 어조로 주문했다.

넬슨 교수는 “e메일을, 그것도 통째로 보자는 것은 언론 자유를 해칠 수 있다. 어느 선진국에서든지 취재원 공개로 이어질 e메일의 공개를, 특히 다른 기사의 취재원까지 노출시킬 자료 공개를 언론사에 요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리뷰’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호이트 교수는 “문제가 되는 1개의 e메일을 찾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e메일을 뒤진다면 그건 부당한 수사(fishing expedition·낚시여행·상대방에게 불리한 증거를 찾기 위해 불특정 자료를 방대하게 수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법률용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이는 수천 마리의 물고기 가운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방대한 그물망을 던지는 것으로, 기자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걸려 있다”고 설명했다.

단, 호이트 교수는 “적법한 영장이 발부됐다면 (신문사의 저항 행위는) 법의 권위와 충돌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 같으면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취재원 보호의 권리와 공권력에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사회가 언론에 준 공적 권한(prerogative)”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댈글리시 사무국장은 “미국에선 비밀 취재원을 끝까지 지킨다”며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우선 언론이 독립성을 유지하고 자유로운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려면 정부의 잘못을 독립적으로 듣고 취재해 기사를 써야 한다는 점을 그는 들었다. 실체적 진실을 독자에게 공개하고, 정부의 설명만이 아니라 비판적인 내부자의 견해도 함께 전달해 언론을 접한 독자들이 ‘지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가 말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는 또 하나로 언론사의 현실적 조건을 말했다. 그는 “정부 내부인사는 뭔가 나쁜 게 진행된다는 걸 알더라도 기자가 자기의 익명성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비밀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익명성을 보호하지 못하면 어떤 취재원이 언론을 신뢰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뉴욕타임스도 올 5월 사설에서 “기자의 취재원 보호 권한은 흔히 기자 개인을 보호하는 특권으로 포장돼 비판받지만 진짜 수혜자는 내부 고발자와 그 고발의 결과로 혜택을 받는 사회 전체”라며 관련 법 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법의 문제점을 환기시켜라”=그러나 미국에서도 법조계에서는 “언론이 공익기능을 담당할지라도 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변호사인 댈글리시 사무국장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지적이며 모두 맞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법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언론인 생활과 미디어 변호사를 모두 경험한) 나로선 e메일의 무차별적 공개 요구는 거부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모든 법률적 절차를 밟으라. 신문사가 법의 한계에 도전하고 문제점을 환기시켜라”는 말도 덧붙였다.

넬슨 교수 역시 “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판사 1명의 견해를 사법부 전체의 견해로 볼 수는 없지 않느냐. 따라서 법률적 구제 절차를 밟아서 다른 판사의 견해도 들어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신문사 편집국에서 경찰력을 막아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도 했다.

호이트 교수는 검찰이 영장을 좀 더 구체화해 이 영장을 새로 발부받는 것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음도 시사했다.

그는 “검찰이 구체적인 압수 대상 e메일을 적시한 새로운 압수영장을 발부받아오더라도 거부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 좀 더 판단해 봐야 할 문제(closer call)”라고 말했다.

▽국가조직의 배려=취재과정에서 갖게 된 의문은 ‘이렇듯 언론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면 왜 연방정부를 감시 견제할 미국 의회가 법 제도를 갖춰놓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32개 주가 이에 관한 주법을 갖고 있고 17개 주는 법률은 아니지만 ‘기자들의 취재원 보호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선언적 규정을 갖고 있다.

댈글리시 사무국장은 “법 규정은 없었지만 정부와 수사기관은 수정헌법 1조가 명시한 언론 자유 정신을 충분히 이해한 결정을 내려 왔다. 현직 언론인을 소환해 (거짓 증언할 때 형사처벌을 받는) ‘선서 후 증언’을 하도록 강제하는 일은 극히 제한됐다. 따라서 따로 입법하자는 요구가 크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언론인의 소환은 모두 극소수에 그쳤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강경한 언론정책을 펴면서 횟수가 크게 늘어났다.

호이트 교수와 댈글리시 사무국장은 “이런 경향 때문에 공화·민주 양당이 초당적으로 추진하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지원법’ 초안을 하원 법사위원회가 8월 1일 표결에 부치는 점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본보 기자들“법 집행 가장한 언론자유 침해”▼

동아일보 기자들은 29일 검찰의 압수 수색 시도와 관련해 “법 집행을 가장한 국가 기관의 언론 자유 침해에 맞서 절대 물러설 수 없다”며 영장 집행을 단념할 것을 검찰에 촉구했다.

기자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언론의 취재원 보호는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의 핵심이며 국가 기관의 최우선적인 의무는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지키는 일”이라며 “검찰이 언론사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발부한 것은 언론 자유와 헌법 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자들은 “신문윤리실천요강 5조 5항은 ‘기자는 취재원의 안전이 위태롭거나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신원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면서 “언론의 정당한 보도 과정을 캐내기 위해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은 법의 허울을 쓴 언론 탄압과 다름없다”라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또 “기자가 ‘피(被)내사자의 관련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를 압수 수색한다면 모든 언론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검찰에 문을 열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당 기자는 취재원에게서 입수한 자료를 관련자들을 직접 인터뷰해 확인 작업을 거쳤고 자료를 보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해당 국가 기관도 (신동아가) 입수한 자료가 과거 국가 기관이 생산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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