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 겨냥 ‘언론 플레이’… 협상단 압박 노린 듯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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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23명을 납치한 뒤 아프가니스탄 정부 교섭단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탈레반의 지능적인 협상술이 아프간 정부와 한국 측을 애먹이고 있다.

탈레반은 협상에 진전이 없다고 여겨지면 “억류한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거듭 위협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에 한국군 철수 요구는 철회한다”고 마치 국가 외교부 성명과 같은 발표를 주요 외신에 직접 알리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협상 과정에서 교묘하게 협상 파트너를 상대로 ‘협박’ ‘교란’ ‘안심’ 전술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 1명 살해, 8명 석방 외신 보도 왜?

25일 탈레반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다”며 “인질 중 1명을 살해했고 앞으로도 계속 살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6일 오전 5시 30분 협상 시한까지 ‘동료 죄수’가 석방되지 않으면 추가로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일부 인질을 석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질을 무참히 살해한 의도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탈레반은 피랍자 석방의 요구 조건이었던 동료 죄수의 석방을 위해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요구 사항이 동료의 석방인지, 돈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료 석방이라는 납치의 명분을 강조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화전 양면의 전술은 특히 협상 상대인 아프간과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초조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탈레반이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카드라고 판단했을 개연성도 있다.

일각에선 탈레반 내부에서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탓에 혼란스러운 양상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 강온 양면 작전 구사

탈레반은 고도로 지능적인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탈레반은 한국인들을 납치한 뒤 24시간 단위로 협상 마감 시한을 연장하다가 25일엔 시한을 11시간으로 줄였다.

특히 탈레반은 21일과 22일 단 두 차례만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협상 마감 시한을 통보했다. 이후 한국 정부 대표단이 현지에 도착해 본격 활동에 들어가자 탈레반은 홈페이지 긴급 공지를 멈추고 주요 외신들과 접촉해 자신들의 주장을 알렸다.

특히 24일과 25일에는 뚜렷이 대비되는 강온 양면 작전을 펼쳤다. 24일에는 “평화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석방을 요구하는 8명의 탈레반 동료 수감자 명단을 아프간 정부에 넘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25일이 되자 오전부터 “협상에 진전이 없다”며 “동료 수감자가 풀려나지 않으면 한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으로 돌아섰다.

오후가 되자 탈레반은 끝내 “인질 중 1명을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은 “항상 (살해)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한국 국민이 아프간 정부 교섭단을 압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혀 한국 국민의 민심까지 이용하겠다는 계산을 숨기지 않았다.

아프간 현지 시간으로 25일이 채 지나지 않은 한국 시간 26일 새벽 결국 한국인 인질 8명의 석방 소식이 흘러나왔다. 탈레반은 하루 동안 ‘살해’와 ‘석방’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동시에 구사한 것이다.

○ 상대 가리지 않는 언론 플레이

사건 직후부터 탈레반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외신들을 최대한 활용해 왔다. 탈레반 대변인이라고 주장하는 카리 유슈프 아마디는 20일 로이터통신과의 통화에서 전날 한국인들을 납치했다고 처음으로 시인한 뒤 많은 외신과 접촉했다. 아프간 통신사인 아프간이슬라믹프레스(AIP)과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물론이고 AP통신, AFP통신, DPA, 일본 교도통신 등과 번갈아 연락을 취하며 통신사 간 경쟁을 유도했다. 그는 위성전화를 통해 주요 외신들에 먼저 연락한 뒤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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