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천국 미국… 기업들 ‘뻔한 경고문’으로 몸사리기

  • 입력 2007년 6월 27일 02시 59분


“혹시 교통사고를 당했나요? 그럼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세요. ○○○ 변호사는 뉴욕 최고의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입니다. 우리는 고객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전까지는 한 푼도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즘 뉴욕의 지역 케이블TV에서 흔히 보이는 광고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홈쇼핑채널에서 진행자가 물건을 팔듯 변호사가 TV 광고를 하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유는? 미국은 소송 천국이기 때문이다.

현직 판사가 자신의 바지 분실을 이유로 한인 세탁업주에게 거액의 소송을 제기해 국제적인 관심으로 모았던 ‘바지 소송’도 소송 천국인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소송 붐이 소송 만능주의로까지 번지면서 황당한 소송도 갈수록 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다.

미시간 소송남용감시단 등 소송개혁단체들에 따르면 기상천외한 소송이 한둘이 아니다.

취객이 경찰을 상대로 음주운전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체포하지 않고 방치했다며 소송을 냈고, 복역 도중에 몸무게가 늘어난 재소자가 국가를 상대로 식단 부실을 이유로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재소자의 국가 상대 소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

심지어 성폭행 용의자가 도주 기간 중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하게 되자 “왜 경찰이 빨리 체포하지 않았느냐”며 책임을 물을 정도다. 본인 부주의로 엎질러진 커피에 데어 화상을 입은 고객이 도리어 식당과 커피 회사를 상대로 ‘뜨거운 커피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거는 일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소송에 대한 두려움은 숱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료소송이 매우 발달해 있기 때문에 결국 소송 비용은 비싼 의료비로 전가되고 있으며, 의사들은 방어 진료에 급급해한다. 변호사 비용 등 소송 관련 비용은 매년 2000억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은 소비자 소송을 예방하기 위해 제품에 각종 경고문을 넣고 있다. 미시간 소송남용감시단은 소송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매년 황당한 소비자 경고문을 뽑는 행사를 실시해 오고 있는데 올해 1위는 ‘세탁기에 사람을 넣지 마세요’였다.

이 밖에 △유모차를 접기 전에 아이를 먼저 빼내세요 △성냥을 켜서 연료탱크를 확인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말리지 마세요 등도 뽑혔다.

친구 생일파티를 놀이시설에서 할 때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혹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문서에 먼저 서명해야 하는 것이 미국 사회다. 여름 캠프 때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소송 남용을 막기 위한 소송 개혁(tort reform)이 중요한 화두가 되어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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