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한벌에 600억원 물어내라고?

  • 입력 2007년 4월 28일 03시 02분


세탁소에서 양복바지 수선을 요청 받았다가 바지를 잃어버렸다면 얼마의 대가를 치러야 할까.

미국 워싱턴에서 세탁소 3곳을 경영하는 정모 씨 부부는 2005년 분실한 고객의 바지 때문에 6500만 달러(약 600억 원)를 변상하라는 거액의 민사소송에 휩쓸렸다.

26일자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정 씨 부부의 오랜 고객인 변호사 로이 피어슨 씨는 2005년 5월 3일 허리 사이즈를 늘려 달라며 바지를 맡겼다. 워싱턴 행정법원에 판사로 임용되면서 출근용으로 입으려 했던 것.

약속한 이틀 뒤 바지를 찾으러 갔지만 “아직 못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는 말을 들었다. 첫 출근 날 아침이 왔지만 이날 그는 자기 바지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정 씨 부부와 피어슨 씨의 악연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2년에도 피어슨 씨는 바지 세탁을 맡겼다가 관리 실수로 분실하는 바람에 150달러를 변상 받은 일이 있었다. 정 씨 부부는 “앞으론 우리 세탁소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집에서 가까운 이곳을 계속 찾았다.

이 신문이 확인한 소송자료에 따르면 피어슨 씨는 세탁소 벽에 붙어 있던 ‘당일 수선’과 ‘고객만족 보장’이란 말이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그는 “약속과 다르지 않은가. (바지가 없어져 쓸모없게 돼) 양복을 새로 사야 하니 1150달러를 물어내라”고 했다.

실랑이가 오가는 사이 세탁소는 1만2000달러까지 제시하며 소송을 피해 보려고 했으나 거절당하는 바람에 결국 사건은 법정에 오르게 됐다.

문제는 상식을 벗어난 소송가액. 자동차가 없는 피어슨 씨는 앞으로 10년간 주말마다 다른 세탁소에 가기 위해 500번 이상 렌터카를 이용해야 한다며 1만5000달러를 내라고 했다. 또 지난 2년간 소송 준비를 위해 쓴 개인시간 1000시간도 ‘고급 인력’ 임금에 맞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배상청구액을 터무니없이 부풀릴 수 있었던 것은 워싱턴의 소비자보호법 조항 때문. 이 법에는 사업체의 부당한 처우 1건에 하루 최고 1500달러까지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 사건은 나아가 양측의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피어슨 씨는 정 씨 부부 변호사에게 “지구상에서 ‘고객만족 보장’이란 표지를 붙여 놓은 세탁소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정리해 몽땅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정 씨 부부 측은 법원 제출서류를 통해 “그런 곳은 없다”고 답했다.

재판부도 황당한 사건에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이 신문은 담당 판사가 “청구인이 악의를 갖고 소송을 진행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이 신문의 웹사이트는 수십 개의 댓글이 따라 붙었다. ‘변호사를 비꼬는 농담이 1000개’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미국답게 대체로 여론은 피어슨 씨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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