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미안해하기 앞서 우리 아이들 돌아보는 계기 삼도록”

  • 입력 2007년 4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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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후 수십 명의 미국인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조승희가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의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48) 소장은 “한국에서만 범인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 소장의 진외조부(아버지의 외할아버지)는 1895년 한국에 와 기독교 불모지였던 호남에서 선교와 교육사업을 시작한 유진 벨 선교사다.

대대로 한국에서 선교와 교육 사업을 한 집안이어서 인 소장은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본인은 자신을 겉은 흰색이지만 속은 노란색인 ‘달걀’(겉은 미국인, 속은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외국인이며 동시에 한국인인 그에게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나타나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대해 들어 봤다.

―한국인들은 이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이란 것 때문에 미안해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집단적인 체면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랑 같은 집단(인종, 국적)에 속해 있는 사람이 사고를 쳤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그동안 한국이 강조해 온 개방성, 글로벌화 등과도 거리가 먼 모습이다. 좀 더 강하게 말하면 집단 히스테리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나.

“일단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이 체면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 자신감 부족 같은 것도 원인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서서 사과를 하겠다고 하는 건 황당한 일이다. 우리 스스로 미국과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봐라. 우리가 얼마나 동등하게 잘 협상했나.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버지니아공대에서 열린 추모식을 보면 행사 마지막에 엄숙한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뀐다. 이게 바로 미국 문화다. 한국에서 죽음은 슬프고 절망적이고 경우에 따라선 화나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죽음을 한국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인생을 졸업한다’는 의미도 강하다.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슬픔을 표현하기보단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미국 문화를 이해 못하고 우리가 더 슬퍼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이 얼마나 이상하게 받아들이겠나. 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이 지금 보이는 모습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럼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이 나타났어야 했나.

“범인이 한국인이란 게 이슈가 될 게 아니라 우리 사회는 과연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지 고민했어야 했다. 서울 대치동에 가봐라. 지금 한국 교육에 인성 교육은 없다. 이미 오래전에 한국 교육도 ‘외톨이(loner)’를 양성하기 좋은 형태로 바뀌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 빼고는 스스로 패배자라고 생각하게까지 만든다. 외톨이이며 동시에 패배주의자인 학생들 중 조승희 같은 행동을 할 학생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더 안 좋다는 뜻인가.

“과거에는 확실히 한국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똑같다고 본다. 비록 이번에는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미국은 가정이든 학교든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학생을 찾아내고 조치를 취하는 데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을 무조건 덮으려고 한다. 잠재적으로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대형 사고를 치기에 한국이 더 좋은 여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말도 안 된다. 안 그래도 내가 위원으로 활동 중인 문화관광부 산하 국가이미지개발위원회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하더라. 사과는 할 필요 없고 차분하게 위로 표명 정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주미 한국대사가 금식기도를 제안했다고 한다.

“제발 그런 일 좀 하지 말라고 하라. 완전 오버하는 거다. 가장 냉정하고 차분하게 행동해야 할 정부가 더 감정적이고 성급한 것 같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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