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참극으로 생명을 빼앗긴 젊은 영혼 32명을 위한 추모식에 더 어울리는 것은 뜨거운 눈물일까, 서로를 격려한다는 뜻의 박수일까. 사건 발생 이튿날인 17일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정에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학생 교직원 가족 1만5000명이 체육관과 인근 미식축구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렸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연설에 나섰다.
그러나 눈물범벅이 되겠다 싶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대학(주립)의 최고관리자인 티모시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가 단상에 오르자 박수가 터졌다. 기립박수는 20초 가까이 이어졌다. 가족의 죽음을 놓고 박수를 쳐선 안 된다는 한국인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지사는 “슬퍼하고, 분노하고 절망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그는 “비통함을 뒤로한 우리는 학교의 색을 상징하는 주황색과 밤색 티셔츠를 입고 하나가 됐다. 얼마나 위대한가?”라고 물었다. 그는 책임을 따지기보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위해 주는 우리가 좋다고도 했다.
추모식 끝 무렵에 용의자 조승희 씨를 가르친 교수로서 그를 어떻게든 밝게 인도하려 애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니키 조바니(영문학) 교수가 연단에 섰다. 그는 씩씩하고 당당했다. 여자교수였지만,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적당히 느슨하게 맨 남성 정장 차림이었다.
“우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우린 즐거워야 합니다. … 우린 승리할 겁니다. 승리할 겁니다. 승리할 겁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는 등단 시인이었다. 운율이 강조된 연설문에 미식축구장을 메운 학생들은 들썩였다. 연설이 끝나자 운동장의 학생 1만 명은 ‘Let's go Hokies(학교 마스코트)’를 10여 차례 외쳤다.
이날 추모식은 ‘함께 슬퍼하지만 너무 침울해하지 않는다, 스러져 간 그들을 기리지만 살아남은 우리가 중심일 수 있다’는 발상에 맞춰진 것이었다. 취재차 이곳을 찾은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권 기자들에게는 미국 냄새가 물씬한 이런 장면이 끝내 낯설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차분한 슬픔이 캠퍼스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노리스홀 인근 잔디밭에서 열린 촛불 추모집회에는 버지니아공대 셔츠 차림의 학생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수천 명의 학생은 촛불을 든 채 희생된 친구와 가족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울리는 트럼펫의 연주에 맞춰 이들이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졌다.
블랙스버그=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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