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난사 용의자는 한국인]정부, 미국내 反韓감정 ‘불씨’ 번질까 긴장

  • 입력 2007년 4월 18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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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후 외교통상부 당국자들이 외교부 브리핑 룸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후 외교통상부 당국자들이 외교부 브리핑 룸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정부는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인 조승희 씨로 밝혀진 뒤 이 사건의 부정적 여파가 한미 관계 전반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교통상부를 중심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17일 대책회의를 마친 뒤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미국에서 아주 오래 거주한 한국계로 한미 관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아주 예외적인 개별적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외교부는 미국 측에서 한국계 학생이 용의자라는 발표를 한 직후 브리핑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인종적 편견이나 갈등이 부각되면 안 된다”며 “미국도 한국인이 용의자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발표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개인의 행위라는 점을 부각시켜 한미 양국 국민 간에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 같은 지침을 미국의 전 공관에 전달했다.

외교부는 또 권태면 워싱턴 총영사를 단장으로 하는 대책반에 사건 피해자들을 위로하도록 지시하는 등 이번 사건이 반한(反韓) 감정을 촉발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서둘러 취했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조만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전화로 이번 사건이 양국 간 갈등으로 비화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할 방침이다.

외교부는 북미국과 재외동포영사국을 중심으로 대책 상황실을 운영하며 미국 현지의 상황 변화에 신속히 대응키로 했다. 정부는 18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관련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사건 발생 보고를 받고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며 유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 뒤 이날 오후 늦게 재차 유감 및 애도의 뜻을 밝혔다고 청와대 대변인인 윤승용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했다.

정부는 특히 이번 사건이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비자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하는 것을 추진 중이었다.

정부는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고 미국 법 개정에 따라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의 가장 큰 장벽이었던 ‘비자 거부율 3% 이내’ 기준이 철폐돼 프로그램 가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정치권은 이번 사건으로 교포사회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외교당국의 신속한 조치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열린우리당 서혜석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만에 하나 외교적 문제나 인종차별 문제로 확대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는 차분하고 신속하게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통합신당모임과 민주당, 민주노동당도 정부에 대해 이번 사건이 인종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오후 5시 ‘한국계 가능성’ 정보에 “제발 아니길…”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가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전달된 것은 17일 오후 5시경. 이 보고를 받은 외교통상부에 비상이 걸렸다.

외교부는 용의자의 신상이 20대의 한국계 영주권자인 교포 2세로 믿고 있다는 미국 국토안보부의 정보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면밀히 확인하는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또한 권태면 워싱턴 주재 총영사를 단장으로 하는 긴급대책반을 현지에서 구성하고, 영사와 행정 직원 등을 버지니아공대에 급파해 현지 상황 파악에 주력했다.

같은 시간 송민순 외교부 장관 주재로 차관, 차관보, 각 실국 국장 등이 모여 용의자가 한국인으로 드러날 경우 미국 교민사회에 미칠 파장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외교부는 특히 이번 사건으로 미국 내 반한(反韓) 여론이 고조될 경우 한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외교부의 움직임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계 학생이 용의자라는 정보가 사실이 아닐 경우에 대비해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것.

오후 7시경 외교부는 용의자가 한국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당국자는 외부 인사들과의 저녁식사 약속을 취소하고 대책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측의 공식 통보가 오후 10시를 넘을 때까지 오지 않자 당국자들은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오후 10시 20분경 미국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용의자가 23세의 한국인 영주권자 조승희 씨라고 밝혔다. 미국 전역에 이 같은 내용이 생방송되기 직전 외교부는 미국 수사당국의 공식조사 내용을 통보받았다. 용의자는 조승희라는 한국인으로 1984년 1월 18일생이며 1992년 부모를 따라 이민간 뒤 미국에 거주했다는 것.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최종 확인한 직후 한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관계가 최근 잘 풀려가는 상황에서 악재가 생겼다”고 탄식했다.

외교부는 범행 동기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한 당국자는 “미 수사당국의 발표 이외에 파악된 게 없다”면서 “처음의 사건과 2시간 이후에 일어난 사건의 범인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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