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총리 9개월만에 사퇴…연정 불협화음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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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 프로디(사진) 이탈리아 총리가 21일 전격 사퇴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누르고 승리한 뒤 5월 총리에 취임한 지 9개월여 만이다.

프로디 총리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 유지를 비롯한 몇 가지 외교 정책에 대해 이날 상원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패배하자 결과에 책임을 지고 내각과 함께 물러났다. 그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 곧바로 긴급 대책 회의를 연 뒤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에게 내각 총사퇴안을 제출했고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날 투표에서 아프간 주둔 병력 유지, 이탈리아 내 미군기지 확장 등의 안건에 대해 프로디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연정은 동의안 통과에 필요한 160표에 2표 모자라는 15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연정 내에서 반대표와 기권표가 나오는 바람에 표결에서 패배한 것으로 분석됐다.

프로디 총리가 내각 총사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는 이번 투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 연정을 구성한 정당 사이의 의견차가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정에는 이탈리아군의 이라크 파병에 찬성했던 중도파에서 극좌파인 공산당까지 9개 정당이 포함돼 있다. 녹색당, 공산당 등은 표결에 부쳐진 이번 사안들에 대해 프로디 총리의 의견에 줄곧 반대 의사를 고수해 왔다.

이에 앞서 동성애 커플에게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려는 계획에는 기독민주당 측이 반발했다. 또 연금 개혁을 비롯한 경제 개혁 추진에 대해선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가 의견을 달리했고 반대로 중도파 측에선 개혁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프로디 정부는 9개월여 동안 색깔을 달리하는 정치 세력이 한배를 타고 가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외신들은 이번 사태가 “1980년대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연정의 구성과 해체가 반복되면서 몇 주 만에 정권이 바뀌는 상황이 반복됐던 것. 잦은 정권 교체로 프로디 총리의 이번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59번째 정부로 기록됐다.

혼미해진 정국 수습은 나폴리타노 대통령 손으로 넘어갔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프로디 총리를 다시 지명해 새 내각 구성을 지시할 수 있다. 또는 정당 지도자들과의 협의를 거쳐 새로운 총리를 지명할 수도 있으며 의회를 해산한 뒤 총선을 조기 실시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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