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니, 이라크정보 연루 의혹 은폐 언론공작"

  • 입력 2007년 2월 21일 15시 44분


미국 행정부 내 강경파의 상징이었던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은 지난해 중간선거 참패이후 급격히 축소돼 왔다. 부통령 비서실 참모들이 지난주 베이징(北京) 북핵 6자 회담 합의 내용에 대해 비공개석상에서 불평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의사결정 구도에서 배제된 채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처지가 된 그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20일부터 최종 심리(審理) 단계로 접어든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리크 게이트'(비밀 요원 신분 노출 사건) 관련 위증 혐의 재판은 체니 부통령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재판과정에서 나오는 증언들은 백악관 웨스트 윙에 있는 부통령실이 그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본연의 업무와 관계없는 일들을 어떻게 기획하고 밀어붙였는지를 드러내주고 있다. 특히 뉴욕타임스 등이 전한 재판 증언 가운데 '언론공작' 대목이 눈길을 끈다.

2003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에 익명의 한 전직 대사를 인용한 기사가 실렸다. "이라크 침공전인 2002년 2월 '이라크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핵개발용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보고해 달라는 체니 부통령의 요구에 따라 CIA가 한 전직 대사를 보내 현지 조사를 시켰다. 그 결과 의혹은 신빙성이 없는 걸로 판명돼 보고 됐는데도 부시 행정부는 이를 무시했다"는 요지였다.

체니 부통령의 지시로 기사 출처 조사에 나선 리비 비서실장은 그 전직 대사가 CIA 요원인 발레리 플레임의 남편 조셉 윌슨 씨임을 알아냈다. 윌슨 씨는 결국 그해 7월6일 뉴욕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체니 부통령은 리비 비서실장에게 적당한 기자를 물색해 자신은 윌슨 보고서의 존재를 몰랐으며, 윌슨 보고서 이후인 2002년 10월에도 CIA가 이라크의 아프리카 핵물질 구입 의혹을 제기한 보고서를 냈다는 내용을 흘리라고 지시했다.

비밀로 분류된 보고서여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체니 부통령은 곧 대통령 집무실을 찾아가 비밀해제를 요청했고, 부시 대통령은 내막도 모른 채 동의해줬다.

리비 비서실장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에게 정보를 흘렸지만 뉴욕타임스엔 CIA 보고서 관련 대목은 나오지 않았다. 부통령 비서실은 다른 언론들을 접촉했고 일부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NBC 방송 계열 케이블 채널인 MSNBC의 정치토크쇼 진행자 크리스 매튜 씨가 계속 "체니 부통령이 윌슨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논평하자 부통령실의 한 참모는 '매튜 씨와 앙숙 사이'인 NBC 워싱턴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자 부통령실은 CIA 국장 명의의 성명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로 그후 테넷 CIA 국장은 "우리 잘못"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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