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동네북 아니다”소송천국 美, 기업상대 소송 제한

  • 입력 2007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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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종 기획소송의 공격 대상이었던 기업들의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자금력을 동원한 이들의 ‘소송 개혁(tort reform)’ 촉구 작업이 연방정부와 법원, 의회를 움직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집단 소송에서 기업이 승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각종 소송 제한 규정도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소송개혁연합(ATRA)에 따르면 미시시피 주 의회는 이미 2004년 배상연대책임 폐지와 의료소송 제한, 위자료 한도 규정을 담은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버몬트 주와 텍사스 주는 ‘비경제적 손실’에 대한 배상, 즉 위자료의 범위를 최대 25만 달러로 제한했고, 미시간 주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사실상 금지했다.

“영화 같은 소송 시대는 갔다.” 요즘 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화두다.

1990년대는 미국에서 ‘기획소송’의 전성시대로 불렸다. 소비자와 시민들이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극적인 원고 승소 판결이 잇따르면서 거액의 배상금 부담을 지게 된 기업들의 존폐 논란까지 불거졌다. 1992년 뜨거운 맥도널드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한 할머니가 소송을 내 무려 29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낸 사건은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화제의 판결.

그러나 최근 소송 제한 규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지금까지 석면소송을 제한한 주가 6곳, 어린이 비만을 문제 삼아 패스트푸드 업체에 배상을 요구하는 식의 소송을 금지한 주도 23곳에 달한다. 악의적 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배상금을 추가로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의 범위를 제한하는 입법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달 비즈니스위크지는 이런 변화를 전하면서 “기업들이 변호사들과의 ‘소송 전쟁’에서 이기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석유 개발만큼 짜릿한 수익을 만들어 내던 각종 집단소송이 설 자리를 잃어 가면서 변호사들의 수익도 급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송 개혁의 절박성을 지적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도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실어 준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찰스 슈머 뉴욕 주 상원의원은 최근 공동으로 경제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들은 “지난해 미 증권시장에서 이뤄진 기업공개(IPO) 규모가 최근 5년간 50%에서 5%까지 감소했다”며 “과도한 소송 부담과 규제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을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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