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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2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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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세계적인 ‘질병과의 전쟁’에 유례없이 막대한 자금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주먹구구식 자금 원조는 세계적 보건의료 체계에 더 큰 악영향을 낳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로리 가렛 선임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2007년 1, 2월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전 세계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공적, 사적 기부의 급증은 자칫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질병과의 전쟁’이 낳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무엇보다 원조금 대부분이 단기적 성과만을 목표로 한 특정 프로젝트에 사용되도록 기부자가 ‘꼬리표’를 붙여 지원한 자금이라는 점. 얼마나 많은 에이즈 치료약(ARV)과 침상용 모기장을 조달했느냐는 식의 눈에 띄는 성과에 관심을 가질 뿐 정작 세계 3대 사망원인인 모성사망, 소아 호흡기 질환, 내장 감염 질환은 등한시되고 있다.
그나마 특정 프로젝트에 투입된 자금도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세계은행의 2006년 보고 자료에 따르면 에이즈 퇴치 프로젝트에 투입된 자금의 절반가량이 유령 고용인의 월급이나 운송 및 보관료, 의약품의 암시장 유출로 인해 새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에선 자금의 80%가 유용됐다.
아프리카 국가는 ‘두뇌 유출(brain drain)’로 의료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그런데 그나마 남은 인력마저 월급을 많이 주는 기부 프로젝트로 발길을 돌려 국가 의료체계가 마비됐다.
이미 아프리카에선 의료 인력이 400만 명 정도 부족한 상태. 하지만 선진국들이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후진국 의료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료 인력의 20%가 외국 출신이다. 2020년엔 간호사 80만 명, 의사 20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큰 문제점은 막대한 외부 지원금이 유입되면서 수혜국의 국내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을 낳고 빈부격차까지 심화시키면서 국가 체제의 약화를 불러온다는 것.
남부 아프리카 국가에 들어가는 에이즈 퇴치 원조금만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고, 모잠비크와 우간다의 경우 국내 고급인력 대부분이 이른바 ‘원조 산업’으로 불리는 해외 기구의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다. 일부 원조기구는 의료인력 월급을 현지 수준보다 100배나 많이 준다.
나아가 원조금을 대는 국가는 수혜국가의 정책 우선순위마저 좌지우지하게 된다. 일례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순결과 정절을 우선하는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을 집중 지원하면서 기존의 콘돔 및 주사기 배포 정책은 설 자리가 없게 됐다.
가렛 연구원은 “공중위생 전반의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안목으로 수혜국에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기부 열풍 외에 남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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