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하원의장 예약 낸시 펠로시 “보라! 여성파워”

  • 입력 2006년 1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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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 시간)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12년 만에 의회를 탈환했다. 사실상 ‘공화당 행정부 대(對) 민주당 의회’의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우리는 미국을 이끌 준비가 돼 있다(We are prepared to govern)”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말처럼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도 어떤 식으로든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2년을 남기고 치러진 중간선거는 또 2008년 차기 대선 레이스를 점화시켰다. 민주당에선 벌써부터 ‘힐러리 클린턴-버락 오바머’ 콤비를 주목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여성도 권력의 최고위직을 무난히 수행할 수 있으며, 어떤 환경도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민주당의 하원 장악에 따라 첫 여성 하원의장이 될 낸시 펠로시(66·사진)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특히 이 말을 강조했다. 5명의 자녀 중 막내가 고교생이던 47세 때 처음 보궐선거에서 하원의원 직에 도전한 지 19년 만에 의회 수장에 오른 소감이다. 하원의장은 대통령 유고시 상원의장인 부통령 다음의 승계권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당선 확정 직후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탈리아계로 아버지가 볼티모어 시장과 하원의원을 지낸 민주당 정치가문 출신인 펠로시 대표는 워싱턴 트리니티대를 졸업한 뒤 샌프란시스코의 투자은행가인 폴 펠로시 씨와 결혼해 가정주부로 지냈다. 40대였던 1980년대부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디딘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활동력으로 기금 모금에 뛰어난 역량을 보였다. 이번 중간선거를 위해 지난 4년간 무려 1억 달러를 모금해 후보들을 지원했다.

펠로시 대표는 진보적인 샌프란시스코 분위기에 따라 낙태를 옹호하고 총기 소유에 반대하며 제3세계 인권 문제를 집중 제기해 왔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에게 맞서 이라크전쟁 반대와 미군 철수 일정 제시를 요구하고 의료보험제도 확대 및 감세정책 반대 등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웠다.

이에 맞서 공화당은 그를 ‘통제 불능의 리버럴’ ‘골수 좌파’라고 비난해 왔다. 부동산 재벌의 부인으로 옷차림과 외모에도 상당히 신경 쓰는 것을 빗대 ‘(명품) 아르마니를 입은 좌파’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펠로시 대표와 일해 본 사람들은 당을 떠나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이라크전쟁 시작 전 반대표를 던졌지만 전쟁이 시작된 뒤에는 예산 지원에 찬성하고, 주요 이슈에서 당내 분열이 극심한 민주당의 단합을 이끌어 내는 등 균형감각과 리더십도 보여 줬다는 평이다.

아메리칸대의 제임스 더버 교수는 “좌파의 대처(전 영국 총리)”라고 말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상호주의의 철칙, 즉 받기만 하지 않고 주는 것을 잊지 않는 유능한 협상가”라고 평가했다. 이번 당선으로 11선 의원이 됐으며 5명의 손자를 둔 할머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 버락 오바머 “가자! 대선으로”▼

2008년 미국 대선 레이스의 점화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특히 주목받은 대선 예비후보는 흑인인 민주당의 버락 오바머(45·일리노이·사진) 상원의원이다.

그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가장 많은 지원유세를 다니면서 ‘록 스타’처럼 인기몰이에 나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벌써부터 ‘힐러리 클린턴-오바머’ 카드가 환상의 콤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폭스뉴스의 대선 가상대결 설문조사에서 공화당의 선두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오바머 의원의 격차는 불과 2%포인트였지만 매케인 의원 대(對) 힐러리 의원은 5%포인트 차였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오바머 의원은 세계화라는 21세기의 화두와 다문화라는 미국의 전통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타이거 우즈나 콜린 파월처럼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일천한 경력을 들어 2012년이나 2016년을 얘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일단 본격 경선에 나서면 힐러리 의원과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냐, 흑인 대통령이냐’를 화두로 뜨거운 경쟁이 예상된다.

미국 역사상 5번째이자 현역 중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인 오바머 의원은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 하와이에서 태어났다. 유아기에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자란 그는 열 살 때 혼자 하와이로 돌아와 할아버지와 살면서 사립학교를 다녔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는 문제 학생이었다. 술은 물론 마리화나, 코카인에도 손을 댔으나 철이 들면서 해고 노동자를 위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정치권에 입문해 “인종을 넘어 하나된 미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해 왔으며 2003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뛰어난 언변으로 스타급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한편 공화당에서는 71세의 매케인 의원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대선 준비를 위해 이번 주지사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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