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아이들 “이젠 말해야 한다”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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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진실을 알리고 싶다.”

푸른 눈에 흰 피부를 가진 노인들이 독일 제3제국 인종 프로그램의 진실 규명을 호소하고 나섰다. 4일 첫 모임을 연 ‘레벤스스푸렌(Lebensspuren·생명의 자취)’ 회원들이 그 주인공. 이들은 모두 나치 때문에 친부모와 강제로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기구한 이력이 있다.

제3제국 시절 나치는 ‘레벤스보른(Lebensborn·생명의 원천)’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아리안족의 순수한 혈통을 잇는 것. 나치는 푸른 눈에 금발 머리, 새하얀 피부를 가진 아리안족을 우수 혈통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나치는 독일은 물론 점령지에서 ‘순수한 혈통’을 가진 여성을 찾아내 친위대원(SS)과 성관계를 갖게 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독일의 우수 가정에 입양시켰다. 혈통이 좋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빼앗아 독일 가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이유로 유대인을 말살시킨 프로그램과는 정반대 성격의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모임을 결성한 뒤 4일 처음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은 이제 환갑이 훌쩍 넘어 노인이 됐다. ‘나치의 아이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모두 5000∼8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그동안 진실을 모르고 있었거나 진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출생의 비밀을 부끄럽게 여겨 주변에 숨기고 살았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폴커 하이니커(66) 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 살 때 친부모와 헤어져 독일의 한 부유한 가정에 입양됐다”면서 “양부모들과의 삶이 나쁘지 않았으나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가 죽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모임을 하게 됐다”며 친부모 찾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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