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도 유엔도 못한 일…70만명의 생명 구했다

  • 입력 2006년 6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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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 달러 규모 게이츠재단은 ‘신개념 민간정부’

‘600억 달러(약 57조 원).’

세계 1, 2위 부자인 빌 게이츠(50)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워런 버핏(75)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의기투합하면서 ‘초대형 자선 재단’이 탄생했다.

버핏 회장이 자기 재산 중 310억 달러를 게이츠 회장이 운영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하면서 게이츠 재단은 자산 규모가 현재 291억 달러에서 600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난다.

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가듯 게이츠 재단은 이제 자선 재단의 ‘대형화’를 주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게이츠 재단의 자선 방식이나 규모에 비춰볼 때 이 재단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새로운 개념의 민간 정부’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 게이츠 재단 이전과 이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과 결핵 퇴치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올해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미국 하버드대 의대 김용 교수는 저개발국의 의료 현실을 얘기할 때 ‘BGF’와 ‘AGF’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게이츠 재단 이전(BGF·Before the Gates Foundation)’과 이후(After)가 100%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기원전과 기원후에 빗댄 표현이다.

게이츠 재단이 가난한 국가의 백신사업을 집중 지원하면서 지금까지 최소한 70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게 의료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교수도 “2000년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저개발국 결핵 퇴치 프로젝트에 모두 4500만 달러를 지원받아 페루 등지에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게이츠 재단의 ‘힘’

자산 규모가 291억 달러인 게이츠 재단은 지난 한 해 동안 모두 13억5632만7000달러를 지출했다. 지원분야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저개발국가 의료 지원에는 모두 8억4374만 달러를 썼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예산 규모와 맞먹는다.

실제로 게이츠 재단은 가난한 국가일수록 심각한 말라리아, 결핵 등의 퇴치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시장성이 떨어지는 ‘제3세계 질병’이라는 이유로 다국적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을 꺼렸던 풍토병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버핏 회장의 가세로 이제 게이츠 재단의 지원 규모가 매년 3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경제에서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효율성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듯 자선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규모의 자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자선도 사업처럼 효율성을 중시한다

버핏 회장은 게이츠 재단에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게이츠 재단이 효율적으로 자선사업을 하는 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게이츠 재단은 기존의 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선에 접근한다.

우선 게이츠 재단 사업 중에는 공연장이나 대학 건물을 지어 준 뒤 ‘게이츠홀’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남기는 사업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대신 인도의 에이즈 퇴치, 페루의 내성결핵 퇴치, 미국 공립도서관 온라인화 지원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분야가 대부분이다.

전체 직원이 234명인 게이츠 재단의 업무 방식도 마찬가지. 어떤 사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철저하게 효율성과 타당성을 검증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자선사업을 하면서도 일반 기업 못지않게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사업가인 게이츠 회장의 영향이 크다는 후문이다. 그는 자선사업에 본격 참여하면서 수백 쪽에 이르는 의학전문서적을 독파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게이츠 재단의 프로젝트가 100%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 학교의 가장 큰 문제인 중도탈락률을 낮추기 위해 시도했던 실험학교 프로젝트는 성공한 학교도 있지만 일부 학교는 실패해 도중에 문을 닫기도 했다.

게이츠 회장은 26일 뉴욕 기자회견장에서 “실패가 있었지만 우리는 실패를 통해 배운다”며 “앞으로도 수많은 실패가 있겠지만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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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제 폐지 부끄러운 일”…버핏, 부시 방침 비판

재산 대부분을 자선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26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 폐지 시도를 비판했다.

버핏 회장은 이날 미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기부 약정식 및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상속세 폐지 시도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난한 뒤 “상속세는 매우 공정한 세금이며, 기회의 균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 부부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버핏 회장은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재단에 기부한 것에 대해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이미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다”며 “유산 상속에 대해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게이츠 회장은 이날 “버핏 회장의 기부를 통해 자선은 꼭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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