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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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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직원 5명이 납치된 나이지리아 코손 유전지대 대우건설 가스플랜트 공사 현장에서 일했던 대우건설 서회경(35) 대리는 당시 현장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발주처인 셸사(社)가 공사 현장에 금주령을 내렸기 때문에 더위 속에 맥주 생각이 간절하면 멀리까지 걸어가 원주민이 봇짐으로 파는 맥주를 사 즉석에서 마셔야 한다.
이곳에서 1년 반 근무한 뒤 올해 3월 귀국한 서 대리는 “나이 들어 다시 군대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달러 버는 것 외엔 낙이 없다”고 표현했다.
○ ‘나이 들어 다시 군대 왔지요’
이곳의 한국인 직원 14명은 나이지리아 직원 30여 명과 주 6일,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식사 시간을 빼면 업무 시간은 하루 12시간.
식사 시간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기 때문.
나이지리아인 요리사는 지난해부터 집중 훈련을 받은 덕에 올봄부터 겨우 밥맛을 제대로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된장국에 김치도 담그지만 나이지리아산 배추로는 맛이 날 리 없다.
여기서 일하다 지난해 11월 귀국한 대우건설 김창업(42) 차장은 “요리사가 간을 못 맞추면 김치 통조림을 먹었다”며 “오로지 일하기 위해 먹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숙소는 한국에서 가져간 컨테이너 3개. 안에는 5평 남짓한 개인 방과 샤워 시설이 딸린 화장실이 있다. 전력 사정이 나빠 대형TV 한 대를 별도 컨테이너의 휴게실에 뒀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가구가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이지리아는 가구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현지 침대는 매트리스에 쿠션이 많아 납치된 박창암(44) 과장은 가끔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 올해 초에도 괴한들 침입
공사 현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격주로 일요일에는 고속정을 50분 정도 타고 포트하커트 시내 술집에 간다.
이동할 때는 항상 별도로 고용한 경비인력과 함께 간다. 올해 초에는 피랍 현장 인근의 다른 현장에 괴한들이 총과 망치를 들고 침입해 금고를 털었다. 월급 전날이었다.
종종 휴게실에서 영화도 본다. 위성 인터넷은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 파일 내려받기는 꿈도 못 꾼다. 대신 4개월에 2주일씩 받는 휴가 기간 집에 다녀온 직원들이 영화 CD를 가져오면 노트북으로 돌려 가며 본다.
가끔은 ‘야동(야한 동영상)’도 본다. 공사 현장과 인근에는 여자가 없다.
얼마 전에는 단순한 생활에 진저리를 친 고참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납치된 김상범(49) 과장이 숙소 인근에 간이 골프연습박스를 만든 것. 티에서 타깃까지는 10m. 김 과장은 “거리가 짧아 공의 탄도를 알 수 없다”고 투덜댔다고 한다.
현재 직원들이 모두 철수한 공사 현장에는 며칠째 주인이 찾지 않은 골프연습박스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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