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루블 초강세…‘국제통화’ 야심

  • 입력 2006년 5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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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와 1루블의 차이는?”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 유행했던 농담이다. 당시는 옛 소련 붕괴 직후로 극심한 정치적인 혼란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을 겪던 상황. 정답은 1달러였다. 루블은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화폐 루블은 1990년대 내내 천덕꾸러기였다. 옛 소련 시절에는 가치가 달러와 대등했다. 하지만 1991년 옛 소련 붕괴 직후부터 폭락해 1997년에는 달러당 5800루블로까지 떨어졌다. 견디다 못한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 가치를 1000배 절상시키는 화폐개혁까지 단행했다.

이런 루블이 최근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오일머니에 힘입어 러시아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 규모인 2257억 달러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24일 현재 루블 가치는 연초에 비해 7%나 올랐다.

나아가 러시아 정부는 루블을 경화(硬貨·hard currency)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까지 보이고 있다. 경화는 달러처럼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통화와 직접 자유 교환이 가능한 화폐를 일컫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평소 “러시아 국민이 외국으로 여행 갈 때 외화를 바꿔 갈 필요 없이 그냥 루블을 들고 나가면 되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루블을 해외에서도 결제 가능한 통화로 만들겠다는 것.

러시아 중앙은행은 달러의 ‘$’같이 루블을 나타내는 국제적인 통용 기호를 만들기 위한 도안작업을 하고 있다. 의회도 최근 국내에서 달러나 유로로 가격을 표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또 고위 관리들이 경제 현안을 보고하거나 발표할 때도 모든 수치를 달러나 유로가 아닌 루블로 표시하도록 했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러시아가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를 앞두고 루블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추진 중”이라고 분석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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